# 낮과 밤은 반반이다. 세상의 밝음과 어둠도 반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혜를 밝혀 어둠을 밝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밝음이 어둠의 영역을 더 많이 차지했기에 그나마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바다의 어둠은 공포로 다가온다. 밤바다에서는 어떤 희망의 기미도 눈치 챌 수 없다. 몰아치는 바람과 물은 수상쩍은 음모로 가득 차 있다. 독도 밤바다에 나서면 느닷없이 문어발 같은 어떤 것이 불쑥 솟아올라 몸뚱어리를 휘감아 끝없는 심연으로 끌고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빛이다.
'망망대해' 동해의 중간쯤에 서있는 독도 등대는 그래서 더 반갑다. 동해를 오르내리는 선박들은 쿠로시오해류와 쿠릴해류가 교차하는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독도 등대의 불빛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독도 등대 불빛은 곧 생존의 증명이고 희망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멀리 외해(外海)를 떠다니는 사람들에게 등대는 희망이 되지만 그 빛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등대는 고통스런 곳이다. 독도를 지키는 항로표지관리원(통상 등대원으로 칭함)은 대부분 기능직 10급 공무원으로 출발한다. 박봉(薄俸)과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에 시달리지만 묵묵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있다.
포항해양항만청 소속인 등대원들은 3인 1조, 8개 조가 7곳의 등대를 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고 있다. 육지의 감포 송대말, 호미곶, 후포, 죽변 등 4곳과 섬 지역인 울릉도 도동과 태하, 독도 등의 밤을 밝히고 있다. 독도를 제외한 모든 등대는 1개 조가 맡고 있다.
독도 등대는 지난해까지 6명 2개 조로 운영됐으나 조장(組長) 1명이 퇴직한 후 1명의 조장 아래 2개 조가 나눠 교대 근무하고 있다. 독도의 등대원들은 1개월 근무에 1개월 휴식이 원칙이지만 현재 조장(6급 소장직) 1명이 결원이라 15일 단위로 근무 교대하고 있다. 등대원들은 1개월간 휴식 기간에도 각종 교육이나 행사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휴식을 기대하기는 힘든 형편.
독도 등대원들은 여름철 경우 교대에 큰 문제가 없으나 연락선이 끊기는 겨울철 3개월(12월 1일~2월 28일) 동안에는 정한 기한대로 교대하기가 어렵다. 겨울철에는 1개월에 한번씩 독도경비대원들의 부식 전달을 위해 울릉도에서 들어가는 해양경찰 경비정을 이용해 교대하거나, 근해서 조업하는 어선을 타고 들어가 교대하기도 한다.
특히 연고지가 대부분 포항인 등대원들은 교대 시기가 되면 기상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며 포항-울릉 간 연락선 운항에 온 신경을 세운다. 어렵사리 울릉도에 도착한 후에도 독도 배편을 잡지 못해 일주일 이상 울릉도에서 발이 묶이기도 한다.
독도 등대원들은 교대 때마다 자신들이 1개월간 먹을거리를 싸서 들어와야 한다. 때문에 이삿짐 같은 짐꾸러미를 배에 옮겨 싣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그렇더라도 장기간 바닷길이 막혀 교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들고 간 부식이 모자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등대원 허원신(39·기능직 9급) 씨는 독도 근무에 대해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뭍에 가면 독도 생각, 독도 있으면 뭍 걱정으로 세월 다 보낸다"고 했다.
"교대해 독도 선착장을 떠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죠. 그러나 15일쯤 지나고 나면 독도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들어가기 하루 이틀 전쯤 조원(組員)을 만나 시장을 보고나면 이미 마음은 독도로 가 있죠."
절반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오늘도 빛을 토하는 독도 등대. 등대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불빛 속에는 불씨를 잇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애환이 녹아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움이 만들어낸 빛은 다시 나라사랑의 단단한 결정체로 응고돼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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