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120년 만의 대가뭄

홍수도 무섭지만 가뭄은 더 가혹하다. 홍수는 한번 지나가면 고비를 넘기나, 가뭄은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사람 피를 말리고, 농경시대엔 세상을 뒤집어 놓기까지 했다.

지난달 사이언스지에 실린 중'미 합동연구팀의 한 논문은, 동굴 속 석순을 분석해 중국의 당(618∼907년) 원(1271∼1368년) 명(1368∼1644년) 세 왕조 멸망의 밑바탕에 바로 가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몬순(계절풍)이 인도양에서 대륙으로 향할 때 세기가 강하면 중국 전역에 비를 뿌리지만 약할 땐 내륙이 가뭄으로 목 타게 되는 게 원인이라고 했다.

그랬던 세 왕조 중 특히 당나라 패망기엔 중앙아메리카에도 극심한 가뭄이 들어 마야문명(300∼900년 사이 전성)이 쇠망하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그 시기는 우리의 신라 쇠망기와도 비슷하니 이것 또한 가뭄과 연관 있는지 모를 일이나, 부경대 연구팀에 따를 경우 한반도에서 대가뭄과 쇠망기가 가장 선명히 연결된 왕조는 역시 조선이다. 1882년 시작해 1901년 정점을 찍고도 29년이나 더 계속된 가뭄이 그때 닥쳤다는 것이다.

근래의 기상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발표된 관련 논문은, 사상 최악으로 판단된 그 가뭄으로 1884∼1910년 사이 한반도 연평균 강수량은 874㎜에 그쳤고, 특히 1901년엔 374㎜밖에 안 됐다고 했다. 그래서 "굶어 죽는 사람이 전국에서 발생했고 한양으로 거지 떼가 몰려들었으며 폭도로 변한 백성들 때문에 밤중엔 나다니기 위험했다"고 해밀턴이란 영국인이 기록해 뒀을 정도이다. 러시아는 그 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상관측소 통신원을 이곳까지 파견해 이례적인 장기 가뭄을 분석하러 나서기도 했다.

그에 앞서 조선이 크게 가물었던 것은 1777년 전후 13년간이었고, 더 앞서서는 1653년과 1405년에 대가뭄이 들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서 논문은 우리나라엔 124년 주기로 큰 가뭄이 닥친다는 가설을 정립하고, 그게 맞을 경우 2012년에 다시 대가뭄이 시작돼 2025년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심상찮은 가뭄이, 3년여 뒤 닥칠지 모른다는 120년 주기 대가뭄의 전조인가 싶어 불안하다. 어제 발표된 4대 강 정비 계획은 이런 것까지 고려해 세운 것인지 모르겠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