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 많은 제약회사 사장의 딸(과부)과 결혼했다. 곧 주주총회가 열릴 것이고 나는 회사의 전무가 될 것이다. 돈 많고 빽 좋은 여자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아내는 말했다.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오세요. 돌아와 보면 전무님이 되어 있을 거예요."
장인과 아내의 권유로 나는 일주일간 고향 무진으로 왔다. 나이가 좀 든 뒤로 내가 무진에 간 적은 거의 없다. 몇 번 갔던 것도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다.
무진은 내게 '순수'와 '낭만'이 있던 아이시절 장소다. 내가 서울로 가기 전에 자랐던 곳이며, 세파에 찌들기 전 영혼을 간직한 장소였다. 서울에서 성공하기 이전의, 아직 무엇이 될지도 모를 '백지'의 장소였다. 그러니 내게 무진행은 '세파에 찌든' 내가 '순수로 돌아가는' 의미다.
무진에서 나는 세 사람을 만났다.
박(朴)은 무진 중학교 몇 해 후배였다. 그는 학생 시절 이른바 문학소년이었다.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하고 그리고 가난했다. 그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은 국어선생이다. (박(朴)은 아직 순수를 간직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다.)
조(趙)는 무진 중학교 동기이다. 그는 고등고시에 합격해 지금은 이곳의 세무서장으로 있다. 지금도 부유하지만 그는 돈 많고 빽 좋은 여자를 만나 출세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있다. (조(趙)는 무진으로 오기 직전 서울에서의 내 모습이다)
또 한사람 하인숙. 그녀는 서울 출신으로 이곳 무진에서 음악교사로 있다. 대학 졸업 연주회 때 오페라 '나비부인' 중에서 '어떤 갠 날'을 불렀던 사람이다. 그녀는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어떤 갠 날'이 아니라 유행가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하인숙은 오락가락하는 지금 내 모습이다.)
박과 조, 세무서 직원들과 하인숙, 나는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후 하인숙을 바래다주었다. 하인숙은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다시 만난 하인숙과 나는 산책했고 같이 잠자리를 했다. 나는 하인숙에게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면은 '순수상태'를 서울에서도 유지하겠다는 내 의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튿날 아침 아내의 전보가 왔다.
'27일 회의참석 필요. 급상경 바람, 영'.
27일은 모레이고 영은 아내의 이름이다. 아내의 전보는 무진에서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을 명료하게 판단해주었다. 모든 것은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자유 때문이라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내의 전보는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해 잊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와 전보는 다투었다. 그리고 타협했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유행가를,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 만이다. 꼭 한번만.'
나는 하인숙에게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됐습니다. (중략)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찢어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작가 김승옥이 1964년 '사상계'에 발표한 '무진기행'이다. 소설 속 배경인 무진은 실재하지 않는다. 혼돈, 안개, 밤, 방황, 공상, 순수를 포함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무진의 대척점에 선 서울은 일상성을 유지하고 현실적 질서를 따르고 싶은 마음의 공간이다. 나는 무진과 서울, 하인숙과 아내, 순수와 세파, 가난과 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서울'로 돌아간다. 아내가 보낸 단 한 줄의 전보로 무진에서 꿈꾸었던 모든 꿈과 이상은 '여행자의 치기'로 전락하고 만다.
하인숙을 버리고 돈 많은 아내에게로 간다는 것은 한때 여행지의 치기나 낭만 혹은 몽환에서 현실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정 자신이 사랑해야 할 여인 하인숙,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장소 무진, 자신의 본질이 되어야 할 모습을 버리고 다시 '관성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팻말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 김승옥은 '어린 날의 순수를 기억하라'고 말하지만, 어린 날의 순수를 고집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이를 먹고도 눈 새파랗게 치켜 뜨고 대거리한다면 '순수'가 아니라 '퇴행'이 아닐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넌 변했어. 치기 넘치던, 순수하던, 장난기 가득했던 네가 좋았어.'
과연 그럴까. 나이를 먹고도 치기와 순수로 가득해도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까. 내가 '서울의 질서' '돈 많은 아내'를 버리고 '안개 자욱한 무진'에서 '가난뱅이 여자'와 살겠다며 떠나도 나를 지금처럼 반길까. 어쩌면 '사람이야 참 좋지…'라고 읊조리지는 않을까. 순수와 낭만은 '과거'형일 때 더 빛나는 게 아닐까.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