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의 한 장면에 나오는 짧은 대사는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패튼 장군이 전투가 끝난 들판을 거닐고 있다. 검게 그을린 땅, 불에 탄 탱크, 죽은 병사들. 장군은 죽어가는 장교에게 입을 맞추고는 그 황폐한 아수라장을 둘러보며 말한다. "난 전쟁을 사랑하네.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나는 전쟁을 진짜 사랑해. 내 목숨보다도 말일세."
패튼은 전쟁광으로 알려져 있다. 병사들을 혹독하게 전쟁터로 몰아넣는 바람에 많은 비난도 받았다. 그는 정말 전쟁을 너무나 사랑한 광인이었을까.
이 에피소드는 이 책의 주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은이는 "전쟁은 정상적이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의 기만적인 수사일 뿐인 '평화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며,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쟁은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융 심리학의 계보를 잇는 심리학자이다. 심리학의 제1원칙은 이해해야 할 현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무겁고 거북한 주제를 심리학의 태도로 들여다본다.
그동안 전쟁은 정치사회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전쟁의 가장 기본적인 충동을 발견하기 위해 신화와 종교, 영혼의 기저 속으로 수직 이동한다. 칸트는 "인간들 사이에서 평화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은 전쟁이다"고 말했다. 또 서구문명의 초기 사상가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했고,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존재는 전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이 충동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했고, 심지어 정상적이기까지 하다고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신화 속 전쟁을 통해 공포와 아름다움의 융합과 조화를 끌어낸 것이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동침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쟁에 대한 특이하면서도 독보적인 통찰이다. 그는 전쟁을 상상하고 이해할 때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베트남전 당시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제야 이런 대재앙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결과를 상상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회고했다.
상상력의 실패는 '반복된 오류'를 뜻하며 이것 때문에 국가와 지도자들이 재앙의 길로 접어들어 '바보들의 행진'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전장에서 쓰인 다양한 보고서, 병사들의 편지, 군 당국의 분석자료, 신화와 위대한 사상가의 저술 등 방대한 자료를 인용해 전쟁에 대한 기존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전쟁 전문가들의 연구가 아니라 '원형심리학', 즉 전쟁의 심층 심리에 대한 신화와 철학, 그리고 신학이다"고 역설한다. 352쪽, 1만4천5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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