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오래 되면 누구든 인연의 끈은 끊어집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은 그나마 '저 혼자'라서 다행입니다."
16일 오후 대구 달서구 신당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과연 아픈 사람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열도 없는 온돌 바닥에 힘겹게 앉은 이차숙(49·여)씨는 "아파보면 안다. 면역기능이 약해 조금만 지저분하면 몸이 더 불편하기 때문에 항상 쓸고 닦는다"며 20년 넘은 자신의 생활을 반추했다. 이씨는 '만성신부전증', '부갑상선 기능항진증', '저혈압' 등 한 몸에 여러 가지 병을 달고 있는 심각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중이염'마저 앓고 있어 오른쪽 귀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이씨는 "23일 신장이식 수술날짜가 잡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이씨에게 유일한 희망인 23일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안절부절못했다. 이식을 받아 다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보다 병원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이날도 병원비를 구하러 다녔는데, 20만원을 빌린 게 전부라고 했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지만 별무소득이었다는 이씨. 자신이 4년간 모은 '300만원이 전부'라고 했다.
"교통비 아끼려 걷고, 보일러도 안 틀고, 끼니도 조금씩 걸러 4년간 모은 돈인데 300만원밖에 안 돼요.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신장이식과 관련한 검사) 1년에 3번 정도 온갖 검사를 하는 데 80만원씩 써요. 한 달에 20만원을 모은 게 최고로 많이 모은 거에요."
신장이식에 대비해 모았다는 300만원은 그렇게 모은 것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로부터 받는 장애수당 16만원과 생계급여 34만원을 아끼고 또 아낀 것. 이씨의 방이 냉방인 이유도 그제서야 알았다.
"기증하려는 사람이 먼저 입원해야 해요. 그러려면 제가 내일까지 560만원 정도를 입금해야 되거든요."
기증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도 500만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 사전검사비, 기증자관리비, 간병인비 등 일종의 계약금과 마찬가지인 이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신장이식은 물거품이 될 판. 내일이라는 날짜를 보니 '17일'이다. 이씨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의 끔찍한 '혈액투석'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콩알만하다 해서 '콩팥'으로도 불리는 신장. 하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신장 때문에 온몸에 흐르는 피를 꺼내는 작업을 이틀에 한 번 꼴로 해야 한다. '신부전증'이라는 병은 그래서 무섭다.
두려움을 안은 채 이씨는 힘겹게 대화를 이어갔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금세 피곤에 지친 이씨. 귀가 들리지 않아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던 이씨는 "아픈 게 죄"라고 했다. 그는 1992년 어머니(1999년 작고)의 신장을 기증받았지만 6개월 만에 병이 재발했던 경험이 있다. 부작용도 두렵다. 복막투석만 5년. 혈액투석으로 10년을 버텼다.
기증자와 조직검사가 맞는 것도 드물어 그는 또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여년간 살아온 아픔의 날들과는 작별하고 싶습니다. 수술비가 없어 발만 굴려야 하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대구에 살고 있는 한 40대 여성의 기증을 통해 새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된 이씨. 삶을 연장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돈에 막혀 바둥거리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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