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우리끼리'는 이제 그만

이방인 쫓아냈던 스페인'獨 몰락/외지인 포용 않는 대구와 닮은 꼴

포르투갈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를 3분하고 있던 카스티야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는 정략 결혼을 통해 통일 카스티야왕국을 세운 뒤 그 여세를 몰아 1492년 레콘키스타(Reconquista'국토수복)를 완성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이 사건은 스페인이 유럽의 절대강자로 올라서는 시발점이 된다.

이들은 레콘키스타 완성 3개월 뒤 알함브라 칙령을 반포, 유대인을 추방한다. 이는 스페인 몰락의 遠因(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 유대인들은 세계 유대인 가운데 가장 부유했으며 '세파르딤'(Separdim)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꽃피워 내기도 했다.

유대인을 추방한 숨은 목적은 그들 재산의 수탈이었다. 레콘키스타 완성의 공신들에게 줄 땅과 재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스페인에서 내쫓긴 유대인들은 후에 네덜란드에 자리 잡아 16~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비교우위론으로 자유무역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데이비드 리카아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家(가), 영국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 등이 이들의 후손이다.

1933년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직업공무원복귀법을 만들었다. 이 법의 최종 목적은 유대인 혈통을 4분의 1이라도 가진 사람은 모두 공직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대학교수와 현대 과학사에서 많은 업적을 낸 빌헬름카이저연구소 직원은 공무원 신분이었다. 이 조치로 1천여명의 교수와 과학자가 해고됐고 독일물리학회 소속 과학자의 25%가 외국으로 나갔다. 여기에는 노벨상을 받은 아인슈타인, 플랑크, 구스타프 헤르츠, 슈뢰딩거 등 탁월한 과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독일 과학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과학자들의 질은 떨어졌고 기초연구도 침체했다. 반면 이들을 받아들인 영국과 미국은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 물리학의 경우 미국 학자 논문의 인용 횟수는 1913년 3%에 불과했지만 1938년에는 무려 15%로 증가한 반면 독일학자의 논문 인용 횟수는 30%에서 16%로 급감했다.

대구가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다. 학술, 문예, 공연 등 문화분야도 '생산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 원인으로 흔히들 김영삼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잃어버린 15년' 을 지목한다. 그 기간동안 국책사업 배정과 예산지원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대구 정도의 경제규모에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만을 침체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의 自認(자인)밖에 안된다. 중심부 국가들의 수탈이 주변부 국가들의 저발전을 낳았다는 종속이론이 가난을 해결하지 못했듯이, 원인을 정부 탓으로 돌리는 자세로는 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나와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배타성이다. 대구에 정착해 20년 이상을 살았어도 대구에서 학교, 특히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대구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어도 대구에서 고교를 다녔으면 대구사람으로 받아준다.

대구사람에 대한 집착은 '끼리끼리' 문화의 과잉을 낳는다. 대구에 정착한 '외지인'은 대구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대구의 외지인들은 '오리지널 대구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충고나 조언을 하려고 하다가도 "너희끼리 잘 해봐라"며 그만두는 것이 다반사이다. 발전을 위한 귀중한 자산을 잃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대구는 同種交配(동종교배)의 도시'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자연계에서 동종교배는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낳는다. 그 반복은 종의 사멸로 이어진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몰락과 나치 독일의 과학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대구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그 첫걸음은 국제감각에 앞서 '汎(범)한국' 감각부터 갖추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남이가'는 버려야 할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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