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곳간 잠가라" 은행권, 돈줄 졸라매기

17일 오후 대구시내 한 저축은행. 한 CEO가 찾아와 대출상담을 하고 있었다.

"신용도가 좋은데 갑자기 대출이 안 된답니다. 오히려 있는 대출도 갚으라고 하네요. 여태까지 주거래 은행으로 친하게 지내왔는데 정말 어려울 때는 도움이 되지 않네요. 정부가 계속해서 은행들에게 대출을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저축은행에서 한번 도와 주세요."

금리가 내려가면서 풍부한 유동성이 기대되고 있지만 은행들이 돈줄을 죄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은행들도 '할 말이 있다'는 입장이다. 자기네 곳간 채우기에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다음달까지 곳간을 채워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은행의 생사(生死)가 갈릴지 모른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은행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시내 한 은행의 이달 중순 중소기업대출잔액은 지난달 말에 비해 오히려 300억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돈줄을 오히려 죄고 있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거래은행이 수입 신용장 개설에 난색을 표한다. 예금 담보를 수입액만큼 채워놓아야 신용장 개설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데 은행들이 해도 너무한다"고 발끈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 이름이 있는 기업이라고 해서 돈을 풀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러 오는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정부투자기관도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는 상황인데 지금 누가 잘려나갈지 알 수 없는 판이다. 개인들이라고 해서 안전한 대출자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은행들은 대출을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예금으로 돈을 빨아들이고, 이것도 모자라 연 8%에 이르는 초고금리 후순위채까지 발행해 시중의 돈을 모아가고 있다. 지난달부터 4대 시중은행들이 금리가 연 8%에 육박하는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끌어들인 자금은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10~11월 두 달간 중소기업과 가계에 대출한 금액에 맞먹는다. 결국 돈을 푼 만큼 후순위채를 통해 빨아들여 실제로는 시중에 풀린 돈이 거의 없는 셈이다.

대구은행도 지난달 1천500억원가량의 후순위채를 판매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끝냈다. 이처럼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하면서 돈을 싸들고 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시중의 돈이 또다시 은행금고 안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모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돈을 흡수해 움켜쥐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지만 BIS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외환위기 당시 BIS 비율로 퇴출이 결정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누가 뭐라고 비난하든 지금 돈줄을 죌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