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사람들-등대원③

▲ 독도 등대 방문객들에게 등대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박영식 등대장.
▲ 독도 등대 방문객들에게 등대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박영식 등대장.
▲ 지난 5일 20여일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성철 등대요원(앞쪽)과 등대를 나서는 박영식 등대장.
▲ 지난 5일 20여일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성철 등대요원(앞쪽)과 등대를 나서는 박영식 등대장.

# 잠자다 스친 아내 살갗에 놀라 선잠 깼을 때의 황당함.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소리, 파도소리 대신 들리는 차량 경적의 괴리감. 하늘과 맞닿은 바다만 보다 아파트 문에 적힌 동호수를 보았을 때의 이질감.

한달, 혹은 보름 주기로 교대하는 독도 등대 근무자들은 뭍으로 나왔을 때 '공간 이동'에 따른 생경함에 잠시나마 곤혹스러워한다. 아내는 늘 옆에 있고 차들은 달리고 아파트 문 표시는 그 자리에 있지만, 무중력 공간과도 같은 동해 바다 한가운데 있다 보면 머릿속에는 이런 풍경들이 금세 하얗게 지워진다.

박영식(57·포항 북구 환호동) 등대장은 지난 6월부터 매월 달(月)이 차는 15일간은 포항 집에서 휴식을 하고, 달이 기우는 15일간은 독도에서 근무한다. 1년 전 독도 근무 초기에는 A조 조원들과 한 달씩 근무했지만 B조 조장이 퇴직한 지난 6월부터 보름간씩 근무하게 된 것이다.

독도 근무는 한달 중 보름이지만 날짜에 맞춰 교대하기는 어렵다. 이달 근무는 20일을 넘기기도 했다. 바람이 거세 파도가 높아지고 뱃길이 끊기면 조바심이 난다. 조장이란 체면 때문에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지만 가족 품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똑같은 것. 포항 집에서는 지난 6월 결혼한 아들 내외와 부인이 가장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박 등대장의 부인은 지난 9월까지 일을 했으나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있는 형편이다.

박 등대장은 1985년부터 등대 근무를 시작했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라서 집안 터전을 일군 박 등대장은 공무원이기보단 울릉도 사람으로 친근감이 더 짙게 배어난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후 17년간 울릉도에서 뱃사람 생활을 했다. 9년 정도 오징어배를 직접 운영했고 8년여 동안은 어촌계 잠수선 선장을 맡기도 했다.

뱃일을 그만둔 것은 1984년 말쯤이다.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서 바다를 떠다니는 뱃일이 싫증나 방황하던 차에 늘 가까이 의지하던 등대의 불빛을 생각했다. 밤바다를 밝혀 뱃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가이드가 되어 주는 등대를 그는 늘 가슴속으로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간 400만~500만원 정도 벌던 수익도 팽개치고 월 18만원 받는 공무원이 됐다.

첫 발령지는 울릉도 태하 등대. 그곳에서 1991년까지 6년간 근무했다. 올해 34세인 아들과 네살 아래 딸은 울릉도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다. 그 후 포항해양항만청 소속 여러 등대에서 순환근무를 했다. 호미곶 등대에서는 과거 등대박물관을 위탁 운영할 당시 박물관 직원으로 한 해 근무하기도 했다.

정년을 1년 6개월 정도 남긴 박 등대장. 그를 보면 뱃사람의 호탕함과 예민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 바다 날씨를 점치고 독도 근해 배들의 조업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다. 그는 언제쯤 고등어가 물러가고 한치가 들어올지, 문어는 언제 올지 매일매일 바닷속 고기들의 움직임까지 읽고 있다.

그러면서도 축전지나 배전반 점검 등 등대 일에 대해선 손톱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발전실이나 축전지실은 손바닥으로 쓸어도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을 만큼 말끔하다. 등댓불을 비추는 등명 유리는 파리가 미끄러지게 반들반들해야 하고 모든 기계의 계기판은 최적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

망망대해 모진 바닷바람에 맞서는 독도 등대. 온 밤을 말갛게 새우며 날이 선 빛살을 쏘아 그 밤바다를 지키는 박 등대장.

그는 "가족과 떨어져 내 손으로 밥해 먹는 고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밤바다에 떠있는 친구들이 나의 불을 의지하고, 또 이 불빛으로 인해 독도가 더욱 굳건히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뿌듯하다"고 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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