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이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써보고 싶었다. 어느 소설 제목에서 본 이 짧은 한 행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긴 기적 같은 여운과 쓸쓸한 낭만에 젖게 했던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로,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부산에서 또다시 배를 타고 남해로 향할 때의 그 아름다운 여정이 훗날 내 생의 그리운 궤도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멈출 수 없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있어 그 어린 시절의 완행열차가 그토록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차창 너머 바라 본 청도, 밀양, 삼랑진…. 물고기 이름처럼 아름답던 마을의 불빛은 아직 잘 있을까? 가다 보면 엉금엉금 따라오던 산들과, 느릿느릿 뒤처지던 나무들, 또한 늙은 거북처럼 웅크린 물금, 구포 역사도 그대로일까? 그 길에 만난 자운영 달개비 들매역을 지나 환한 '단풍 같은 창'을 달고 내 머리 위로 사라지던 그 붉고 긴 황혼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 '황혼의 캠브릿지발' 저녁 기차였는지 모르겠다.
거기 세 남자가 탔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 세계의 비밀과 별과 은하계를 연구하던 최첨단 물리학자와 신세대 우주과학자였으니 그 세 남자, 캠브릿지대학 학술회 마지막 날 런던행 저녁 기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무수한 논리의 벽을 뛰어넘어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영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과학의 한 차원을 끌어올리고 이에 더해 시를 시답게 하고 예술을 진정 예술답게 하는 그 전광석화 같고, 화룡정점 같은 영감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을 그들이 그날 답해주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온갖 예술의 황홀경을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영감이란 바로 상상의 세계에서 오는 것임을 그들이 그 낭만적인 저녁기차 속에서 답해주었던 것이다.
"이 우주가 충돌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럼, 충돌이 우주의 물질을 만들었다는 거냐?"… 그렇게 시작했던 세 남자의 천진난만한 말꼬리 물기는 캠브릿지 다리가 멀어질수록 가속이 붙었고 따라서 그들의 상상력 또한 무한궤도로 무한 질주했던 것이다.
사실 내 일천한 지식수준으로 그들의 학설이야 수십 번 설명해 준다 해도 이해 불능이고 이해 난망이지만 그러나 저 광막한 '우주 탄생설'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경이롭고 가슴 벅찬 일이었던가? 어쨌든 그 세 남자, "빅뱅은 우주와 우주가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 결과"라는 이 세상 어떤 시보다 더 시적이고 어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가설을 유추했던 것이다. 바로 그 캠브릿지발 저녁열차 속에서. 그것도 열차가 출발한 지 불과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고.
내 어린 시절을 태운 무궁화호, 비둘기호는 아직도 그 낡은 침목 위를 덜컹이며 달리고 있을까? 가끔은 저 광대무변의 우주 속으로 달리고 싶지 않을까?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차라리 별똥별처럼 까마득한 밤하늘로 흘러가 버리고 싶은 꿈을 꾸지는 않을까? 어쨌든 영원한 생명을 위해 프로메슘별을 향해 떠났던 은하철도 999는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세 남자 역시 "이 세계는 대양 위에 떠 있는 무수한 물거품 중의 하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저 거품처럼 일었다 사라지는 무한한 우주 중에 하나, 그것도 그 우주의 한구석 은하계, 그 은하계의 한쪽 모퉁이 태양계, 그 태양계의 뭇 별 중 하나에 불과한 이 푸른 행성에서 잠시잠깐 만나 스쳐가는 여행자인 걸까? 그리하여 언젠가 저 캄캄한 망각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질 저녁 8시에 떠나는 기차의 낯선 탑승자인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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