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얘기한다.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네루다는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마리오는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계속 아프고 싶다? 기가 막힌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늘 아프다. 가슴을 짓누르고, 갈라 놓고, 뻥 뚫어 놓는다. 아프면서도 계속 하고픈 것이 사랑이다. 계속 그렇게 아프고 싶다. 사랑에 대한 최고의 메타포(은유)가 아닐 수 없다.
'일 포스티노'는 시와 은유를 찬미한 영화다. 이탈리아 작은 섬의 집배원이 망명 온 유명한 시인에게 편지를 전해주면서 순수한 자아와 시심(詩心)을 발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1952년 칠레에서 추방돼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 작은 섬에 기거할 때의 실화를 근거로 만든 작품이다. 마리오 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지는 안토니오 스까르메따의 원작 '불타는 인내심'의 17세 소년 집배원을 30대로 바꾸고 자신이 직접 주연과 각본을 맡았다.
마시모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 후 사망했다. 영화 촬영 전 이미 두 번의 심장수술을 받았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그는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 포스티노'는 그의 유작이자, 그의 영혼이 녹아든 영화이다.
그는 어눌하면서도 순진한 시골 집배원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일 포스티노'의 진정성을 한껏 높였다.
시는 다른 세계를 여는 창이다. 창 너머를 비춰주는 아름다운 프리즘이 바로 은유이다. 이 영화는 섬과 바다, 바람과 별을 시와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풀어낸다. 글자를 겨우 읽던 마리오는 은유를 알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부들의 그물은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이 되고, 밀물과 썰물도 '배가 단어들에 의해 튕겨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신부님의 종소리 등 그동안 예사로 보던 사물들이 모두 시적영감의 대상이 된다.
마리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시를 써달라고 네루다를 조른다. 네루다가 거절하자 "시는 시가 필요한 사람의 것"이라는 놀라운 말을 한다. 시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 시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의 것이다.
시인 박진형은 '은유라니요'라는 시에서 마리오의 시심을 한번 더 은유한다. 마리오는 바다가 되어 일곱 개의 초록 혓바닥으로 베아트리체를 만지고 가슴을 토닥거렸다고 확장하고, 은유가 처녀의 젖가슴에 농밀한 판타지의 흔적을 남겼다고 찬미한다. 친절한 바닷새, 네루다에게 '시가 나를 찾아왔어요'라고 말하는 마리오의 모습이 절실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화가 이영철은 네루다와 마리오가 언덕 위에서 바다를 함께 보는 장면을 중앙에 배치했다. 화면 하단은 해안과 섬을 드로잉으로 처리했고, 대시인의 권유로 은유의 세계에 직접 걸어 들어가는 마리오의 모습을 담았다.
둘을 감싸 안고 있는 것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그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은유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별처럼 빛나는 은유가 '베아트리체 루소'이다.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섬의 아름다움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 마리오는 망설이지도 않고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가 '계속 아프고 싶었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 영화 속 최고의 은유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4)
감독:마이클 레드포드
출연: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로이지
러닝타임:116분
줄거리: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가 망명 온다. 작은 섬은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우체국장은 전 세계에서 오는 네루다의 우편물을 위해 어부의 아들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지)를 고용한다. 마리오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네루다의 비법을 알고 싶어 그에게 접근한다. 네루다와 쌓여진 우정과 신뢰를 통해 마리오는 아름답고 무한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리오는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소(마리아 그라지아 꾸치노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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