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교실은 전시상황?'
수능시험 성적 발표와 함께 대학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요즘 고교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고3 교실에서는 대학 합격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진학상담이 한창이다. 24일 대학들이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은 머리를 맞대고 입시전략을 짜는 데 몰입하고 있다. 진학상담이 이뤄지는 고교를 찾아갔다.
◆작전회의 방불케 하는 진학상담
17일 오전 대구 동구 신천동 청구고 진학지도실. 군대로 치면 '작전사령부' 같은 곳이다. 평소엔 한산하던 이곳은 요즘 교사와 학생들로 북새통이다. 교사들은 책상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갖다놓고 학생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입 주변에 거품이 생길 지경이라고 했다. 대화 중에도 전화 벨이 수시로 울린다. 학부모나 다른 학교 교사들의 전화가 대부분이다. 박영식 교사는 "학생들에겐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라 수능점수뿐 아니라 적성과 전망 등 모든 것을 따지다 보니 상담 시간이 학생당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교사와 상담하는 내용을 A4용지에 빼곡히 받아 적고 있었다. 학부모 장병윤(46·동구 효목동)씨는 "아들이 모의고사 때보다 점수가 적게 나와 고민"이라며 "일단 선생님과 많은 것을 이야기하니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 같다"고 했다.
몇몇 교사들은 진학실 자리가 좁아 아예 교실에 임시 상담실을 만들었다. 3학년 6반 교실에는 별도로 책상을 여러개 붙인 상담 공간이 있고, 책상 위엔 입시자료집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게시판엔 대구진학지도협의회와 입시학원이 만든 '잣대'(배치기준표)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남기재 교사는 서모(18)군과 상담하면서 "비싼 등록금 내고 적성에 맞지 않거나 비전이 없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단순히 점수에 맞춰 진학하기보단 10년 뒤를 봐야 한다"며 "대학 홈페이지를 보고 미리 원서를 내지 말고 경쟁률을 살피면서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군은 "상담을 통해 긴가민가했던 부분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달라진 풍속도
고교의 진학상담은 대구진학지도협의회의 잣대가 나오는 다음날부터 본격 시작된다. 올해는 17일부터 진학상담이 이뤄졌다. 교사들은 입시학원과 진협의 잣대 등을 비교하면서 기준을 어디에 잡을지 회의를 한다. 대건고 이대희 교사는 "같은 학과라도 발표한 곳에 따라 20점 이상 차이가 나고 배치기준표가 달라 어느 것에 기준을 맞추느냐에 따라 진학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다.
요즘은 교사와 학생 간의 '줄다리기'가 많이 사라졌다. 과거엔 학교나 학과를 놓고 학생·학부모들의 '고집'이 심심찮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잘 없다. 박영식 교사는 "인터넷 등에 워낙 정보가 많다 보니 학생들이 미리 정보를 파악해 두기 때문에 학생들과 옥신각신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대학이 가, 나, 다군으로 나뉘어 선택의 폭이 넓어져 웬만하면 대학에 진학하니까 과거처럼 학생들의 긴장감도 많이 줄었다.
상담할 때 학부모가 같이 오는 경우도 크게 줄었다. 학생들이 대체로 학부모가 같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다 상담 전에 미리 가족 회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기준'을 잡기 때문이다.
남기재 교사는 "과거엔 학생 10명 중 6, 7명은 학부모와 같이 와 복도에서 기다렸지만 지금은 10명 중 1, 2명 정도만 학부모가 동참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부모가 같이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학생들은 단순히 점수만을 보고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지만 학부모가 같이 오면 적성이나 비전 등을 살필 수 있고 상담 시간도 길어져 나중에 '뒷말'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수능시험
고3 학생들에게 수능이 있다면 고3 교사들에겐 진학상담이 있다. 그만큼 진학 상담은 엄청난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대희 교사는 "이 기간엔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학생들의 장래가 걸린 문제라 책임감이 막중한데다 교사들에겐 자존심은 물론이고 진학 결과가 능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짠밥'이 중요하다. 보통 고3 교사는 경력 4, 5년 이상 돼야 하는 게 보통이다.
상담을 하면서 안타까운 에피소드도 종종 발생한다. 강북고 권재한 교사는 "상담할 땐 학생이 충분히 어떤 과에 합격한다고 봤는데 갑자기 지원자가 몰려 그 과의 합격 점수가 확 오르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땐 정말 소주 생각난다"고 했다. 또 권 교사는 "실컷 상담을 해서 대학과 학과를 정해놓았는데 학생이 원서 접수를 자기 마음대로 했을 때는 정말 허탈하다"고 했다.
박영식 교사는 "지난해 한 학생이 경북대 수시에 합격했는데 모르고 예치금 내는 기간을 놓쳐 결국 재수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이대희 교사는 "어떤 학생은 충분히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인데 논술을 치기 싫어 연세대나 서강대에 지원했다"며 "하지만 다른 학생이 자신의 점수대에 서울대에 가는 걸 보고 뒤늦게 후회해 재수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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