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만득이는 어느 날 꿈을 꿨다. 돼지 7마리가 품 속에 뛰어드는 길몽 중의 길몽. 눈을 떠보니 오전 7시 7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에 만득이는 시내버스를 타고 경마장으로 향했다나. 마침 시내버스 번호판도 '7777'. 엄청난 횡재를 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만득이는 통장에 남은 돈을 모두 찾아 7번 말에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 마침 우승 예상마의 번호도 7번이었다. 그러나 대박을 꿈꿨던 만득이는 경기가 끝난 뒤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유는? 만득이가 베팅한 말은 7마리 중 7등을 했기 때문.
이야기 둘. 지난주 '퇴물 절름발이 경주마 예상 밖 우승'이라는 신문기사가 실렸다. 13마리 경주마 중 1위로 통과한 '루나'라는 경주마는 전성기인 4, 5세를 훌쩍 넘긴 7세인데다 선천적으로 뒷다리 부분의 허리관절이 약해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었다고. 지난 2005년 960만원이라는 '헐값'에 팔리는 수모를 딛고 우승한 '루나'의 배당금 비율은 무려 53.9배. 하지만 루나의 우승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조교사가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고 매일 인삼과 영양제를 먹이고 원적외선 찜질로 허리를 치료했으며, 주위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수의사를 찾아다니며 훈련과 치료를 병행했다고.
'만득이의 대박 꿈'과 '루나의 우승'.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대박을 꿈꾼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바로 곁에 있는데도 우리가 몰라볼 뿐.
◆그날의 행운은 숫자가 결정한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웃을 일만은 아니다. 행운의 숫자 '7'이 계속되는 기막힌 우연 속에서 경마에 '올인'하지는 않더라도 길 모퉁이 로또 판매점에 들르지 않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른바 '행운 예감'을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숫자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주택회사에 근무하는 김현호(40)씨는 "공중 화장실에서 변기를 선택할 때에도 순서를 헤아리는데, 가령 변기가 홀수개이면 가운데를, 짝수개이면 가장자리를 택한다"며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차량등록사업소에서 등록대행을 해주는 조모(47)씨는 "고객들이 차량을 등록하기 전에 특별히 기피하는 숫자가 있는지 묻는다"며 "간혹 숫자 '4'를 극도로 기피하는 경우는 있지만 '4'가 연속되지만 않으면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대구차량등록사업소 관계자는 "아직 숫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에 번호판에 '4'가 들어가거나 너무 눈에 띄는 번호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홀짝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번호 중 선택은 가능하지만 특정 번호를 주거나 빼지는 못한다"고 했다.
앞서 가는 차량의 번호판을 보고 행운을 점치는 경우도 있다. 번호판의 숫자를 모두 더해 '9로' 떨어지거나 화투에서 말하는 '땡'이 나올 경우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가령 '7658'이라는 번호의 경우 앞뒤 두자리씩을 더하면 '13'이 두 개 나오는데 끝자리만 보면 '33', 즉 '3 땡'이라는 이야기다.
시간을 보고 그날의 행운을 점치는 경우도 많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는데, '오후 4시 44분'인 경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딴청을 피우다가 다시 시계를 봤는데도 여전히 시계는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어 더 조심하게 된다. 반대로 7시 7분이거나 12시 25분(성탄절), 자기 생일이나 기념일이 숫자판에 뜨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아내 생일이 시계 숫자판에 뜨면 극도로 조심(?)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꿈, 날씨, 교통신호, 옷맵시 등등 행운 예감은 많다.
간밤에 꾼 꿈을 통해 그날 하루의 운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교사 이영주(36)씨는 "간밤에 꾼 꿈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도 아침에 일어날 때 유쾌한 꿈이었는지 불쾌하고 우울한 꿈이었는지 기분이 남아있을 때가 있다"며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쾌한 꿈을 꾼 날은 뭔가 좋은 일이 잇따르고, 기분 나쁜 꿈을 꾼 날은 차를 몰 때나 수업을 할 때도 유난히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출근 길 자동차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켰을 때 처음 흘러나오는 노래로 그날의 운을 점치기도 한다.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듣고 싶었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하루 종일 그 멜로디를 흥얼흥얼거린 경험은 누구나 있게 마련. 은행원인 이준규(34)씨는 "라디오를 켰는데 좋아하는 노래의 마지막 소절만 나오고 금세 끝나버렸다"며 "왠지 그날은 행운이 따르다가 말 듯한 기분이 들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켜서 그 노래를 처음부터 듣고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통신호 흐름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기도 한다. 늘 막히고 신호를 서너번씩 받아야 통과하던 길을 일사천리처럼 지나고 나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듯한 예감에 빠진다. 대구예총 최영은(55) 회장은 지난 2006년 1월 제8대 대구예총 회장 선거일에 거짓말처럼 출근길에 길이 뻥 뚫렸고 선거에 이길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고 한다.
택시기사들 사이에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사람과 여자 승객이 타면 재수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다 옛말이 됐다. 한 택시기사는 "불황에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타주면 고마울 뿐이지 가릴 처지가 아니다"며 "다만 승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을 때 건성으로 답하지 않고 재미있게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여성들은 옷매무새나 머리 모양으로 그날 운을 예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원 황윤주(29)씨는 "늘 같은 머리모양처럼 보이지만 아침에 빗질이나 드라이할 때 유난히 모양이 잘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장례행렬을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근거없는 것은 아닐 성싶다.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사장이 예전 삼성 감독을 맡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던 날, 김 감독은 출근길에 장례차량을 보면서 우승을 직감했다고 한다.
◆자기 암시가 행복을 이끈다
행복은 자기 최면이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행운은 찾아온다.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은 "자신을 행복한 승자로 여기는 사람은 인생의 거친 파도를 이겨낸다"고 했다. 데일 카네기는 저서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에서 '당신은 인생의 건축사'이며 '목표가 있어야 행운도 있다'고 강조했다.
임상심리 전문가 이민규씨는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는 책을 통해 불황기에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기회일지 몰라. 뭔가 내게 가능한 일들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부류와 '어차피 재능은 타고나는 거고 성공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라고 하는 부류라는 것. 과연 누가 성공의 길을 걷게 될지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
수잔 애리엘 래인보우 케네디(Susan Ariel Rainbow Kennedy), 머리글자만 따서 '사크'라 불리는 미국의 유명한 자기계발 전문가가 있다. 14~25세까지 250개 이상의 직업을 가졌으며, 자전거로 4천800km를 일주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저서 '꿈을 이뤄주는 자기주문법'을 통해 그는 '마이크로 무브먼트'(micro movement), 즉 작디작은 움직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5초나 5분 정도가 소요되는 꿈 이루기 운동이다. 가령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컴퓨터에 '내 소설' 폴더를 만들고, 서점에 가서 글쓰기 관련 책을 사고, '소설쓰기' 관련 동호회에 가입하는 등 작은 시작과 움직임이 쌓이고 쌓이면 꿈을 향한 발걸음에 가속이 붙는다는 이론이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견업체 차장 강모(44)씨.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금방 세수해서 얼굴도 깨끗하고 조명 탓인지는 몰라도 훨씬 미남으로 보이더군요.
'강○○, 뭐가 문제야?'하고 물어보면 거울 속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비전도 없다, 애는 커가는데 어쩔거냐, 대출금도 갚아야지,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할래 등등 많죠. 가만히 듣고 나서 씨익 웃어보입니다. '그래서? 한숨 쉬면 뭐가 해결돼? 한번 봐. 회사 망한 것도 아니고, 아이 건강하게 자라고 뭐가 걱정이야?' 그러면서 스스로 최면을 겁니다. '잘 났다. 강○○. 네가 제일이야. 오늘 자~알 될거야. 아자 아자."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머피의 법칙 샐리의 법칙
피터 피츠사이몬스가 쓴 '51%의 법칙'이라는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법칙들이 가득 담겨있다. 안 좋은 일은 갈수록 꼬이게 마련이라는 '머피의 법칙'이 있는가 하면 '인생에서 잘 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우연히라도 꼭 그렇게 된다'는 '샐리의 법칙'도 있다.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을 때 상대방이 통화중인 경우는 없고,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먹으려고 했던 초콜릿은 왜 항상 쇼핑백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지. 라디오를 켜면 좋아하는 노래 끝부분이 나오고, 시험범위에서 대충 넘어간 부분은 꼭 시험에 나온다.
하지만 세상사가 꼭 이렇게 뒤틀리는 것만은 아니다. 숙제를 안해서 아침부터 전전긍긍하는데 선생님 왈, "너희들 숙제 다 했지? 오늘은 믿어 보겠어. 따로 검사 안 한다." 회사에 지각해서 잔뜩 움츠러든 목을 숙이고 들어가는데, 하필이면 그날 과장님도 지각! '샐리의 파생법칙'도 있다.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등의 법칙', 일기예보를 잘못 듣고 맑은 날 우산을 쓰고 나왔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더라는 '소나기의 법칙', 새로 산 스카프가 마음에 안 들어 언니에게 줬는데 마침 언니의 생일이라는 '스카프의 법칙'도 있다.
당신은 머피를 택할 것인가, 샐리를 택할 것인가? 이 기사를 읽고 난 당신에게 일주일 내에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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