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연예인은 일반인과 피가 다르다'고 얘기한다.
한 어린 여배우를 만났다. 그녀는 영화 홍보를 위해 1주일째 거의 잠을 못 자고 각종 홍보행사에 끌려 다녔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초주검 상태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화장도 화사하고, 표정도 한없이 밝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귓가에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고통을 표시 내지 않는 것은 위장(僞裝)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의 피는 다르다고 느낀다.
최근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연예인들의 주머니도 설렁하다.
공중파 드라마는 스타들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다. 회당 수천만원의 고정적인 수입과 팬들에게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조연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드라마가 대폭 감축될 예정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먼저 칼을 대는 것이 홍보비용이다. 당연히 CF 출연 의뢰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무엇보다 주업인 영화 쪽 돈이 말리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이다. 최근 새 영화 '돌 플레이어'에 출연한 봉태규는 출연료를 50% 이상 낮춰 1억원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차기작 '인사동 스캔들'에 출연하는 김래원도 출연료를 자진 삭감했다. 100억원짜리 영화 1편보다 1억원짜리 영화 10편이 더 아쉬운 때다. 배우들이 출연료를 낮추겠다는 것도 이런 뜻이다.
그런데 이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00년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연간 한국영화를 150편 이상 제작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올해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40여편. 내년에는 20~30편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내년 1월 17일 개봉 예정으로 후반작업 중이던 영화 '후케몬'의 제작이 중단됐다. 마지막 편집만 남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편집도 마치지 못하고 배급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황 때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18일자 버라이어티가 보도했다. 흥행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마저 그러니 다른 영화사는 오죽할까.
한 영화배우는 "큰일 났어. 굶을 수도 없고"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연예인들의 체감 한파는 더 고통스럽다. 힘들다며 표시 내고 다닐 수도 없기에 더할 것이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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