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 조선의 개혁가 조광조 사사

1519년 12월 20일,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개혁가인 정암 조광조 선생이 전라도 능주의 유배지에서 사사됐다. 당시 나이는 38세.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사약 한 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자, 금부도사는 군졸들로 하여금 목을 졸라 죽이려 하자 "성상께서 나의 목이나마 보존케 하려고 사약을 내리신 것인데, 너희들이 어찌 함부로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느냐? 어서 사약 한 사발을 더 가져오너라!"라고 외쳤다고 전한다. 결국, 사약 한 사발을 더 마시고 숨을 거두게 된다. 조광조는 공자의 지치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다가 훈구파의 반발로 인해 비참하게 숨을 거두게 된 것 . 조광조 선생은 17세 때 김굉필을 만나 수학하게 된다. 이때부터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가 됐다. 당시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조광조 선생은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했다. 그의 도학정치는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것을 계기로 당시 학풍의 변화를 가져와 이황·이이 같은 학자가 배출될 수 있었다.

▶1942년 노기남, 한국인 최초 주교서품 ▶1999년 마카오, 중국 반환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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