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거일의 시사 코멘트]북한 핵무기에 대한 실질적 대처

북한 핵무기를 없애려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오랜 노력이 비참하게 실패했다. 북한에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도 성과라고 내놓을 것은 없다.

그런 실패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는 외교를 통해서 풀겠다"고 선언한 순간 필연적이 되었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외교적 영향력이 스밀 틈이 없는 체제다. 그들은 오직 힘에만 반응한다. 북한의 선의를 믿었다가 끝내 농락당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협상 대표의 초라한 모습이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남긴 것은 북한의 입지 강화다. 북한의 약속만 믿고서 미리 준 막대한 원조는 북한이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북한 핵무기의 정당성이 크게 강화되었다. 무엇이든지 오래 지닐수록 소유의 정당성은 커진다.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보유 국가들에 부여된 정당성이 일찍 핵무기를 보유한 기득권을 인정받은 '할아버지 권리(grandfather rights)'일 뿐이라는 사실은 핵무기 보유 기간의 중요성을 더욱 키운다. 그래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들은 처음엔 비난과 제재를 받지만 어느 사이엔가 권리를 인정받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가 그렇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아시아 비밀임무 책임자였던 아트 브라운은 지금 미국이 북한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힘이 없다고 솔직히 밝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로 미국의 역량이 너무 분산되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빠르게 줄어들어서, 이제 중국은 핵무기에 관해 북한에 어떤 압박도 하지 않는다.

사정이 그러한데, 북한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오바마 정권에서도 국방장관을 맡게 된 로버트 게이츠는 "북한이 핵폭탄을 여럿 제조했다"고 시사잡지에 썼다. 합동군사령부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s)"으로 기술했고, 국가정보위원회는 북한을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로 기술했다. 자체로는 사소하지만, 한데 모이면, 분명히 변화가 느껴지는 일들이다.

핵무기의 확산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방안이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논의되었다는 사실과 겹치면, 이런 변화는 음산한 모습을 한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과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 나올 터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나쁘다. 핵무기의 군사적. 심리적 힘이 워낙 크므로, 핵무기가 없는 우리가 핵무기를 지닌 북한에 맞서기는 어렵다. 우리 자신이 핵무기를 지니지 않는 한, 우리의 안보엔 근본적 약점이 존재할 것이다. 동맹국이 제공하는 핵우산도 우리 자신의 핵무기와 같을 수는 없다.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그 틈새로 북한의 위협은 집요하게 파고들 터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개발은 무척 어렵고 위험한 선택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선 그런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외교를 통한 해결'이라는 구호 뒤로 숨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북한의 없어지지 않을 핵무기에 대응해서 우리도 핵무기를 갖추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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