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휴대폰 부장품

각종 세계기록을 소개하는 월드 레코드 아카데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의 앤드류 애클린이라는 올해 17세 된 소년이 '한 달 안에 문자 가장 많이 보내기'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한다. 한 달간 1만9천678건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놀랍게도 이 소년은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쉬지 않고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일상생활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병적일 정도의 휴대폰 중독 증세 같다.

요즘 우리 사회의 휴대폰 중독도 만만치가 않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에서부터 허리 굽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 걸쳐 휴대폰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휴대폰이 옆에 없으면 하루종일 허전하고 불안'초조하다고들 말한다. 더욱이 휴대폰을 분실했을 땐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돼버리곤 한다. 내비게이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번히 아는 길도 우왕좌왕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다.

휴대폰은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 하나다. 컴퓨터나 TV 등은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갈 수도 없지만 휴대폰은 언제, 어디나 손쉽게 가지고 갈 수 있다. 가장 기쁜 순간에도, 절체절명의 급박한 순간에도 이것만 있으면 외부와 연결될 수가 있다.

미국의 'MSNBC' 온라인판에 따르면 요즘 미국에선 휴대폰을 무덤 속으로 갖고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다. 메리온 셀저라는 여성의 경우 남편의 관 속에 휴대폰과 배터리를 함께 넣은 뒤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전화를 걸고 매월 전화 요금까지 지불한다고 한다. 묘비에도 전화번호를 새겨넣어 다른 사람이 전화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 "사람은 죽은 뒤에도 생전에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에 둘러싸이고 싶어한다"는 것과 "가족들 또한 전화 받는 사람이 없어도 고인과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 장의업자들의 풀이라고.

옛사람들은 고인이 생전에 쓰던 패물이나 그릇 등을 무덤에 같이 묻어주곤 했다. 저 세상에서도 생전처럼 살라는 염원 때문이었다. 진시황릉 병마용처럼 신분이 높을수록 副葬品(부장품)이 다채로웠다. 최근 미국 사회의 무덤 속 휴대폰은 현대 IT시대의 새로운 부장 풍속인 셈이다. 비록 받는 이 없는 애달픈 전화이지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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