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무시당하는 '대한민국'

요즘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예전과 같지 않다.

중국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한국관련 뉴스는 한국경제가 곧 망할 듯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보도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 이뤄진 한·중·일 3국간 통화 스와프(교환) 체결도 마치 중국이 한국에 큰 시혜를 베푸는 듯한 논조로 보도됐다.

적어도 10년은 지속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韓流(한류)'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대신 한국산 각종 '땡'처리 상품들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산 저가의류 등을 들여와서 한국에 파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한국에서 부도난 기업의 땡처리 제품들이 중국으로 역수출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위안(元)화 환율이 높아지면서 한국산 의류는 중국에서 저가상품으로 전락했고 이를 틈탄 품질좋은 한국산 땡처리 제품을 역수입, 중국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중국의 하청공장으로 전락될 날도 멀지않았다는 자조적인 전망이 들어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부러움과 시샘의 눈으로 대했다. 지금 그들은 한국을 무시하거나 불쌍하다는 투로 말을 건넨다. 중국인 친구들은 아예 "북경에 있는 한국사람들 모두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며칠 전 베이징 최대 대중일간지인 '신징바오'(新京報)를 비롯한 중국언론들은 한·미FTA비준동의안 상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폭력충돌한 한국 국회의 난장판 모습을 톱기사로 대서특필했다. 신징바오는 소화기 분말가루가 뿌려지자 한 치 앞을 분간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충돌현장의 선량의 사진을 싣고는 '난장판 한국국회, 전기톱을 무기로 사용하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BBC 등 서방언론 뿐만 아니라 이웃 중국언론들까지 나서서 조롱하고 박수칠 정도로 한국정치는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불과 1년 전 한국의 대선과정을 심층보도하면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중국언론이 이제 한국 국회에서의 의원들간의 폭력충돌은 종종 벌어진 일이고 이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라는 친절한 분석까지 내놓는다.

공교롭게도 한국 국회가 난장판이 된 12월 18일은 중국이 대대적으로 개혁개방의 시대를 연지 30년이 된 날이다. 이날 중국전역에서는 개혁개방 30주년의 성과를 자축하는 성대한 기념식이 곳곳에서 열렸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나마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금융당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소자본 영세기업이 많은 중국에서는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중국정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한국기업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감시하기 시작했다. 칭다오(靑島)는 한국기업 7천여 개가 몰려있을 정도로 한국기업에 가장 친숙한 경제환경을 제공해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칭다오가 한국기업의 무덤이 되고 있다는 무거운 소문도 전해진다.

그러자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 공안부 사업부가 20일 직접 나서 청산절차를 제대로 밟지않고 비정상적으로 철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경을 넘는 원인규명과 소송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대책을 발표했다. 야반도주하는 기업주로 인한 체임과 은행대출 손실부분 등에 따른 경제손실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나서겠다는 강경한 조치다. 중국정부는 지난해 칭다오에서만 87개의 한국기업이 비정상적으로(기업주의 야반도주) 철수했다고 밝혔다. 한 때 중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한국기업들이 이제 중국에서 잠재적인 범죄인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다가는 얼마 지나지않아 한국경제 전체가 중국의 주변경제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우물안 개구리처럼 서로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시대는 끝났다.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중국을 이용할 현명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서명수기자(정치부 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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