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갈등을 안고 있고 이를 풀어가는 방법도 다르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포용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는 물론이고 슈퍼 파워인 미국 역시 문화 갈등과 인종 갈등으로 깊은 상처와 고민을 안고 있다. 반쪽 흑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인종 문제로 갈등하던 미국의 전통에서 커다란 화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외 문제에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를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해왔고 이것이 미국 외교의 특색의 하나가 되어 있다.
한국의 정당들이 이러한 국가 문제와 체제 문제에 부딪치면 어김없이 큰 소리를 낸다. 당 차원에서 싸움이 필요하면 사소한 문제를 이념이나 체제문제로 만들어 싸운다. 언론의 문제가 걸리면 어김없이 예민해지고 국민 생활과 관련되면 더욱 과격해진다. 쇠고기 파동의 경우가 그랬고 부동산 문제가 그랬다. 국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든 국회도 경우에 따라서는 문을 닫고 거리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국민은 분명 국회를 지지하고 다수당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매년 짜야하는 국가 예산안마저 어느 해나 연말이 되어서 가까스로 통과된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일 년 내내 풀지 않고 미루어 왔던 각종 법안이 사활을 건 싸움 끝에 대부분 일괄 처리된다. 그러한 관례화된 싸움의 결과는 대체로 허무하게 끝난다. 해결은 토론이나 타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우리의 갈등 해결은 '떼를 쓰면 무엇인가 얻는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국회도 문을 닫아걸고 여야가 앙숙같이 싸우고 있다. 서로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 그럴듯하고 멀쩡하다. 그러나 이것이 당의 투쟁 과제라고 정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적인 의견은 물러나고 당은 전투사령부가 되며 이 집단에 속한 사람은 의원이건 보좌관이건 전투장으로 나선다. 욕하고 밀치고 부수면서 앞장선다. 가장 가열차게 싸운 전사가 전리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도 그랬고 평화를 위장한 촛불데모가 그랬으며 오늘의 국회가 이러한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싸움이 진행되면 싸움을 합리화하는 '반독재 투쟁', '민주화 투쟁' 등의 그럴 듯한 구호가 내 걸린다. 이 모든 처절한(?) 싸움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한다니 국민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냥 관객처럼 정작 할 말도 못하고 기다린다. 싸움판에 끼어들기보다 구경이나 하다 떡이나 얻어먹는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국회는 참으로 재미있는 무대를 연출한다. 대개의 경우 국회에서 싸우다가 만족스러운 결판이 나지 않으면 거리로 나간다. 법정에서 해결할 문제도 가두투쟁으로 맞선다. 신년 초부터 거리의 투쟁이 시작될까? 이번 싸움은 어쩌면 쉽게 끝날 것 같다. IMF보다 더 무서운 저승사자가 나라 안팎에서 으르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행 시나리오를 이웃 일본은 진작 알고 있고 중국도 알고 이를 이용해 왔다. 이것은 싫던 좋던 우리의 자화상이며 우리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국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이 있는 회사나 단체나 같은 성씨를 관장하는 대종회도 마찬가지다. 싸움의 논리가 궁색해 지면 "누구는 문제없나"하고 말 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으면 된다.
갈등의 문제를 푸는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인격으로 판단하지만 집단이 되면 하나의 문화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나 해결법보다는 우기고 깽판치고 여론을 등에 업으려한다. 우리의 국회가 언제 한번이라도 대화와 타협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가. 이런 성숙한 국회를 보려는 국민의 기대는 또 한번 무너졌다. 내년에는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국회를 봤으면한다. 그러한 능력을 보여주어야 우리도 세계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을 것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우리는 G20의 공동 의장국으로 위촉되고 역사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던 한·중·일 3국이 난국을 푸는데 협력하자는 유례없는 협력관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명우 한국번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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