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Mr. 후회남

둥시 지음/홍순도 옮김/은행나무 펴냄

주인공 쩡광셴의 삶은 후회의 연속이고 되는 것 하나 없는 인생이다. 그의 모든 불행은 입에서 비롯됐다.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은 아버지를 사상개조가 필요한 망나니로 고발하면서 가족은 해체된다. 아버지를 고발한 후 그는 온갖 비판 투쟁대회에 불려 다니며 아버지를 비판한다. 착취계급 비판대회, 성추행범 비판대회, 자본주의자 비판대회…. 비판 투쟁 대상이 없는 곳에서는 아버지를 빌려가서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사상개조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이 장면은 문화대혁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부모는 별거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홍위병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어머니는 직장 상사에게 추행 당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들키자 수치심에 자살한다. 여동생 쩡팡 역시 어머니의 죽음 후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그가 전달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친구는 죽음에 이른다. 그의 입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문제를 일으켜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수렁으로 빠트린다.

입과 더불어 그의 삶을 뒤흔드는 또 하나는 억눌린 성욕이다. 친구의 사촌누나 장나오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녀를 탐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녀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가 잡힌 그는 강간범 누명을 쓰고 10년의 감옥생활을 한다. 장나오에 대한 증오로 탈옥까지 불사했던 쩡광셴. 그러나 출소 뒤에 장나오를 보자마자 다시 욕망에 사로잡혀 지극정성으로 옥바라지하던 루샤오옌을 버리고 장나오와 결혼한다. 그러나 쩡광셴이 이런저런 이유로 첫날밤을 미루는 동안 장나오는 부정을 일삼는다. 그렇다고 이혼해주지도 않는다.

그가 강간범으로 몰려 10년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세상은 천지개벽해 있다. 안마시술소가 등장하고 불법 성매매 업소가 생겨나 있다. 향수만 뿌려도 비판대상이 되던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 장면은 작가가 문화대혁명을 순간적 광기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쩡광셴은 문화대혁명 때 빼앗긴 창고를 되찾아 부자가 되지만 결국 사기를 당한다. 다른 여자를 안을 때마다 헤어진 여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않은 두려움에 결국 나이 쉰에 이르도록 동정을 유지한다.

인생에서 후회를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주인공 쩡광셴.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도 평생 이루지 못한 것에 애달아하며 살지만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지은이 둥시는 좌충우돌 뒤죽박죽인 주인공의 구질구질한 삶을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 않게 그려낸다. 시트콤을 방불케 하는 황당한 에피소드,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들이 끊이지 않는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주인공이 15세 소년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쉰을 눈앞에 둔 1990년대 후반까지 30년을 아우른다. 중국 근현대사의 대사건인 문화대혁명과 개혁, 개방의 시대를 관통하는 셈이다. 지은이 둥시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상황을 주인공의 아버지를 둘러싼 에피소드와 소년이었던 쩡광셴의 눈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제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됐다. 중년에 이른 쩡광셴은 개방 이전의 비판 대상이었던 소자산 계급을 흉내내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장면은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함께, 자본주의 광기에 대한 작가의 시선처럼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자오완녠은 결초보은 같은 기본적인 고사성어도 모르지만 오직 '노동자 계급'이라는 이유로 중학교 교장이 됐다. 문화대혁명 시절 지역의 혁명위원회 주임으로 출세가도를 달리지만 세상이 변하자 쿠바 의류공장의 경비원으로 발령 난다. 친구 위바이자는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청년이었으나, 불법 성매매 업소운영과 탈세 죄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침 역시 중국의 근현대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중국 소설이 으레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시끄럽다'는 느낌이 든다. 활자로 된 책인데도 그 속에서 시끌벅적, 와글와글 하는 소리가 책장마다 튀어 오른다. 중국 작가 위화, 쑤퉁 등의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488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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