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감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1년전 이맘 때 당선된 이명박 정부 탄생 배경의 절대 공신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제발 한번 잘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이 역대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 중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며 정권 창출을 하게 했다.

잘살게 해달라는 것의 또다른 의미는 순탄하게 직장 생활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직장을 잃게 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한 개인에 대해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게 하고, 사회에서 매장되게 하는 최대 죄악이다.

그런데 국민을 잘 살게 해줄 책무를 지닌 이 정부 출범 1년도 안돼 전국에 감원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대·중견·중소·소기업 가릴 것 없이 기업들은 저마다 유례없는 불황을 이유로 내세우며 인력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주초 정부마저 공공기관에 대한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69개 공공기관이 앞으로 3, 4년에 걸쳐 평균 13%에 이르는 1만9천명을 줄이기로 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인력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구조조정 방안으로 인력감축을 택했다는 신호를 민간기업에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등의 강도높은 인력감축 사태가 진행될 것이다.

공공기관은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이란 주변의 질시 속에 철밥통으로 분류돼 왔다. 급여에 버금가는 수당에다 룸살롱 비용까지 기관 운영비로 결제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경비 낭비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보니 인력감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그렇다고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인위적으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권력의 횡포다. 인력감축을 하기 전에 공공기관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마련과 임금동결, 나아가 삭감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이다. 종업원 1천명인 기업이 임금을 동결하면 45개 정도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와 있다. 국내 300명 이상 기업이 참여하면 10만개가 나온다고 한다. 여기에 임금삭감을 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1990년대 중반 독일 폴크스바겐사는 불경기가 심해 매출이 급락, 2만명을 줄여야 한다는 경영진단 보고서가 나오자 노사합의로 근로시간 단축과 20%나 임금을 깎는 고통을 분담하면서 고용을 유지했다. 세계 제1위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1, 2차 오일쇼크 때 사람을 자르는 대신 감봉을 하는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넘겼고 결국 자동차업계 제왕으로 등극했다. 국내에선 동부제철의 사례가 많이 꼽힌다. 감원을 막기 위해 과장급 이상이 30% 월급을 반납해 고통을 분담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보다 매출증대 방안 마련과 임금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순서다. 감원은 가장 나중에 도입해야 하는 극약처방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 대기업의 임금은 중소기업에 비해 턱없이 높으며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가을 국정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은 93년 87.1에서 2007년 86.7로 낮아진 반면 대기업은 117.7에서 145.4로 크게 높아졌다. 지나친 임금 격차 때문에 이들 기업엔 사람이 몰리고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가계를 유지하는 비용조차 빠듯한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 임금동결이나 삭감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곳이 나서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도 봉급생활자들의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임금인플레 해소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려면 일단 공공기관에 대한 인위적인 인력감축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그 뒤 임금삭감을 통해 고통분담하는 분위기와 고용유지에 대한 의지를 기업들에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먼저 실천하면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동참은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대신 정부는 임금삭감을 감수하는 봉급생활자들에게 과감한 소득공제, 세금감면과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도입, 간접보상하는 방식을 강구하는 것이 위기 해결의 지름길이다. 감원이 능사는 아니다.

최정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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