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공연이 넘치는 거리는 활기를 내뿜는다. 문화와 예술은 거리를 걷는 시민들에게 흥을 돋우는 자극제가 된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일깨운다.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들에는 문화와 예술이 곳곳에 녹아 있다. 멕시코 악사가 나팔을 불고, 행위예술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음을 표현한다. 아마추어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을 검증받고 시민들은 박수와 동전으로 평가해준다.
대구 도심도 음악과 공연이 버무려진다면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대구 도심에 가면 늘 즐겁다. 유쾌하다. 신난다'는 인식만으로도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각종 전시, 연극, 뮤지컬, 콘서트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대구 도심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구의 가능성을 엿보다
지난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신천둔치와 희망교~중동교 사이의 물 위에서 펼쳐진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 '2008 시민예술가 시대, 신천에서 예술과 놀자'는 시민들이 얼마나 문화예술에 목말라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불과 일주일 만에 대구 인구의 절반 가까운 100만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문화와 예술, 음악과 공연에 대한 시민들의 묵은 갈증이 해소됐고, 문화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공식을 재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예술과장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소모적으로 보고 있지만 문화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사건"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대구시는 각종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5년 뒤에는 서울에 버금가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컬러풀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다양한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천 속에서 펼쳐친 아트퍼포먼스 '대구환타지', 야외공연예술제, 명작발레 갈라쇼, 대학생들이 참가한 신천조형예술제, 시화전이나 백일장, 가요제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시민 프린지 공연잔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70개 문화예술 단체가 나와 100건에 달하는 공연을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의 숨은 역량과 문화 대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 10월 17, 18일 중구 수창동 옛 KT&G 연초제조창 건물에서 열린 '예술난장' 역시 대구의 문화예술 가능성을 엿본 계기였다. 147명의 대구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해 만든 행사는 이틀 만에 수만명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난타, 인디밴드, 힙합, 퓨전타악, 포크밴드, 거리굿과 마임, 패션쇼, 설치미술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이 관객과 소통하는 공간이 마련되자 폐허가 된 공장으로 발길이 파도처럼 밀려든 것이다.
본지 도심재창조 자문위원인 하정화 미학박사는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생산성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런 문화예술이 도심 곳곳에 꽃을 피운다면 문화의 생산, 유통, 소비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대표적인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팟과 MP3가 필요 없는 도심 만들자
대구는 미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고, 사진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에 대구시는 문화예술 중심도시, 공연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시는 각종 행사를 유치하고, 국제적인 축제를 열고, 대형공연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점잖게 정장을 빼입고 오페라하우스나 시민회관에 들어앉는 문화로는 역부족이다. 하나둘 대구를 떠나고 있는 20대의 '예술 청춘'들을 도심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방 안에 꼭꼭 숨어 있는 생활예술인이나 순수예술인, 취미예술인을 불러내야 한다. 대학 동아리방에서 연습만 하고 있는 음악·공연 동아리에게 손짓해야 한다.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대구에는 각종 아마추어 공연자나 단체, 동호회, 모임 등이 거의 1만개에 달한다.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독립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이 매일 한 가지씩 1년 내내 공연을 해도 시민들이 다 볼 수 없을 정도다.
거리에서 전자기타 공연을 자주 하는 이대희(43)씨는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공연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상가의 스피커 소음만 없다면 도심 곳곳에 무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많이 꺼렸지만 음악이 동성로에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을 1년 내내 열 수 있는 기반은 도심에 충분하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2·28기념공원은 최고의 무대다. 반월당 지하상가와 대현프리몰 지하상가에도 이미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시와 중구청이 공사를 벌이고 있는 동성로공공디자인개선사업구간 중 중앙치안센터, 대구백화점 앞, 대우빌딩 뒷편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작은 광장이 조성된다. 반월당네거리~대구역 앞 대중교통전용지구도 공연, 전시가 이뤄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여기에다 중구 수창동 KT&G 부지에 들어서는 문화창조발전소가 문화예술 생산의 거점이 되고, 이를 통해 발굴된 각종 공연과 전시들이 도심 속에 똬리를 튼다면 시민들은 더이상 MP3나 아이팟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은 대구시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대구시가 이미 진행 중인 저소득층을 위한 '찾아가는 문화마당', 점심시간 콘서트인 '음악이 흐르는 도시' 프로그램을 수시로 열 수 있도록 도심을 바꿔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인을 발굴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개방된 생산 공간과 발표 마당을 제공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년째 경기도 안양시 석수시장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박찬응씨는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매년 시장 상인들과 몇달 동안 부대끼며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해 완전히 동화됨으로써 국내외의 관심을 끌 정도가 됐다"며 "공연, 전시 한두번 열고 조형물 몇개 설치하는 것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높여 보겠다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발상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도시의 경우 시민들 가까운 곳에 창조적인 예술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조성되고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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