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도 모를 캐럴을 부르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친구집 작은 방에 들어앉아 밤새도록 여학생 이야기하면서 떠들던 일도 이제 아주 먼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성탄절은 그래도 왠지 따뜻하게 여겨진다.
재미있는 숙제를 받았다. 하나는 아프리카에 모기장 하나, 혹은 가정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밥 한끼 등을 위하여 5천 원만이라도 기부를 하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형마트가 아닌 거리 행상 가게로 가서 나쁜 과일, 못생긴 과일을 골라서 사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매일같이 벌이는 일이백 원 깎는 거래가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더 얹어주는 이상한 흥정을 하라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하여 우리들 마음은 더욱 옥죄어져 가고만 있지 않는가? 실제 가진 것도 별로 없기 때문에 더 줄일 것도 없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온갖 지출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가난하고 메마른 마음에 단비와도 같은 숙제이다. 5천 원이라는 금액이 큰 금액이 아니기 때문은 아니리라.
얼마 전, 공연 시 로비에 나가 있다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친한 친구가 하나 둘 보이더니 모두 다섯 팀이 넘는 친구들이 각자 그룹을 만들어 공연을 보러 온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가끔 초대권도 안 준다고 구박하곤 하였지만 나한테 이야기도 안 하고 그저 각자 각자 보러 온 것이다. 참으로 고마웠다. 이것 역시 티켓을 팔아줬기 때문은 아니다. 초대권 한 장조차 친한 친구에게 주지 못하는 예술회관 관장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친구들. 그 친구들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기쁨과 감동이었을 것이다. 존중해줄 것을 존중해주고 자애심을 가질 것에 대해서는 자애심을 가지고.
어느 날, 모 작가로부터 받은 짧은 문자. '관계로부터의 실종'. 그저 내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항상 성실하게 살아가면 될 뿐인 것을 살다 보면 우리는 도대체 서로 무엇을 쳐다보는지 진정한 관계는 없고 암묵간의 이해도모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이 암묵간의 이해도모는 결국 관계의 실종을 만들어낸다.
'관계가 실종이 되든, 암묵간의 이해도모가 되든 아무 관계없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삶의 방식.' 진정 큰 프로들의 세계가 이렇게 어설플 수 있을까? 너도나도 추구하는 나만의 이익추구라는 모델은 말 그대로 너도나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모든 지출을 줄이고 있는 마당에 '마음지출'만큼은 한판 늘려보자. 결국에 가서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서로의 속내를 알게 되지 않는가.
성탄절. 분주함 가운데서도 왠지 따스함을 느끼고 싶은 연말. 솔직함을 넘어서 어느 정도 바보 같을 정도의 순수함이 보이는 사람한테 호감이 많이 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수성아트피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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