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살 길이 막막합니다. 지난해 태안의 악몽이 저에게도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25일 낙동강 기름유출 사고가 터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도동선착장. 이곳에서 만난 어부 허규목(60)씨는 시커먼 기름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고기잡이 그물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20여년간 낙동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왔다는 허씨는 새까맣게 변한 그물을 만지다가도 옆에 수북이 쌓인 팔뚝 크기만한 죽은 고기들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허씨가 사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2일 오전 9시쯤. 평소처럼 고기잡이를 위해 강가에 갔더니 강 상류 골재채취장 업자가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배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깜짝 놀라 함께 2㎞ 강 상류로 달려가 보니 기울어진 골재채취선에서 샌 기름이 강물로 흘러들고 있었다. 허씨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 오후 허씨가 건져올린 수십마리의 물고기에서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허씨는 "그날부터 강 안에 매어놓은 통발 300개를 건질 엄두도 못 낸 채 내버려 뒀다"고 말했다. 20여년간 함께해 온 허씨의 고기잡이배 '수영호'에도 온통 기름이 뒤엉켜 있었다. 그물을 시커멓게 뒤덮은 기름덩어리들은 아무리 털어도 쉬 제거되기 않았다. 그물도 모두 쓰지 못하게 됐다.
허씨는 "20여년을 낙동강에서 건져올린 눈치, 둔치, 붕어를 팔아 생계를 이어왔는데 기름덩어리가 강밑에 침전됐으면 앞으로 몇년간은 고기잡이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기름에 찌든 상한 고기를 누가 먹겠습니까. 이 나이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고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일대 주민들도 하루아침에 시커멓게 변해버린 낙동강변을 보며 허탈해 했다. 주민 김모(40)씨는 "어릴 적부터 강을 오가며 멱을 감고 낚싯대를 드리웠던 추억의 장소가 죽음의 장소로 변해버릴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도동서원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오염된 강물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걱정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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