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안사태 축소판' 고령·달성 기름유출 현장 르포

▲ 낙동강 기름유출사고를 낸 모래 채취 준설선. 기울어지면서 흘러나온 기름띠 자국이 준설선 주변에 남아 있어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낙동강 기름유출사고를 낸 모래 채취 준설선. 기울어지면서 흘러나온 기름띠 자국이 준설선 주변에 남아 있어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태안 기름유출 사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일 오후 2시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낙동강변 골재채취장 일대. 고령군 개진면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지난 22일 발생한 골재 채취선 기름유출 사고로 일대 2㎞ 강변이 시커먼 기름에 얼룩져 있었다. 강물이 바람에 출렁일 때마다 검은 기름띠가 강변 자갈과 바위에 부딪쳐 너울거렸고 자갈과 바위 틈에는 기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죽어있는 강변=사고가 난 골재채취장 현장을 찾아가자 기름을 유출한 모래채취 준설선이 보였다. 더 이상 기름이 새지 못하도록 물막이공(흙으로 쌓은 댐) 안에 갇혀 있는 준설선은 배 상판 2m 높이까지 기름이 시커멓게 묻어 있었다. 이번 사고에서 유출된 기름량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강을 따라 내려가자 사고지점에서 2㎞ 떨어진 곳에 강을 가로질러 설치된 오일 펜스에는 떠내려온 기름덩어리가 곳곳에 고여 넘실댔다. 강물에도 연한 기름띠들이 군데군데 떠다녔고 가끔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을 띠며 반짝거렸다. 강변의 바위를 들추자 시커먼 기름이 돌 아래 고여 있었다. 얼핏 봐도 물이 닿지 않은 흰 강변과 물이 닿아 기름때가 얼룩져 있는 죽은 강물과 구분이 분명했다.

고령·달성군청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700여명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강변에 일렬로 앉아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하얀 흡착포로 기름 덩어리가 붙은 돌들을 쉴 새 없이 닦아냈다. 하지만 흡착포로 닦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는 듯했다. 바람이 일 때마다 강변에는 또다시 검은 기름띠가 쌓였다. 강변에는 오전부터 기름덩어리를 제거한 흡착포를 담은 수백여개의 포대들이 쌓여 있었다. 40대 중반의 한 자원봉사자는 "끔찍하다. 지난해 태안반도 사태가 우리 지역에서 재연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몰라=문제는 나흘째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며칠 더 걸릴지,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고령군과 환경당국이 사고 발생 직후 방제작업을 허술하게 하는 등 안이하게 처리했다가 사태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무원 가족이라는 한 자원봉사자는 "하루종일 작업을 해 기름을 다 닦아낸 것 같은데 다음날 아침에 보면 또다시 기름띠가 강변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며 "물속에 가라앉은 기름이 바람이 불면서 강변으로 밀려 내려오는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25일까지 방제작업에 모두 1천350여명이 투입됐다. 장비만도 흡착포 200매짜리 83개 박스, 흡착분말 10박스, 유처리제 20통, 오일펜스 312m가 사용됐다. 하지만 방제작업은 쉽지가 않았다. 태안 사태에서 유출됐던 기름과 달리 엔진오일의 경우에는 점성이 높아 아무리 닦아내 봤자 잘 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더구나 22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강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방제작업을 하는데 더욱 힘이 들었다"며 "최선을 다해 닦아내 보지만 오일이 휘발도 잘 되지 않고 점성까지 높아 강 바닥에 얼마나 쌓이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낙동강을 식수로 사용하는 대구와 경북·경남 지역의 주민들에게 미치는 피해는 당장에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 안심할 수만은 없다. 기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물속에 남아있다 흘러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대구 시민들이 이용하는 강정취수장의 경우 사고 지점보다 상류에 위치해 있고 경남의 칠서취수장까지는 62㎞가량 떨어져 있어 시민들의 수돗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1991년 3월 :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원액 30여t이 낙동강에 유입

▷1994년 1월 : 대구 달성지역 수돗물에서 악취 발생을 시작으로 낙동강 수계에서 벤젠과 톨루엔 등이 검출되는 등 수질오염 파동

▷2004년 6월 : 대구 매곡·두류정수장 등 영남지역 6개 정수장에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 검출

▷2006년 7월 : 낙동강 주요 취수장서 퍼클로레이트 검출

▷2008년 3월 2일 : 경북 김천 코오롱유화 화재 사고로 페놀 유출

▷2008년 12월 22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낙동강 중하류에서 골재채취선 기름 유출로 오염사고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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