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못다한 이야기] 장성현이 만난 사람들

인생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삶의 양태를 모두 체험할 수는 없기에 타인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일은 중요한 삶의 자양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매주 토요일 연재됐던 '인물+'는 한국 사회에 전하는 사회 각계 명사들의 메시지였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삶의 고통을 딛고 대가가 된 사람들, 거대한 자연의 힘에 도전하고 꿈을 이룬 사람들, '남과 다르게 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예술로 내면을 울리는 사람들까지 사회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는 62명의 명사들에게는 확실히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들에게는 비슷한 삶의 방정식이 있었던 듯하다. 절망은 버리고 꿈은 간직하기, 열정을 갖고 현재에 충실하기, 시류에 이리저리 떠다니지 않기 등이다.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세운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대구경북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명사들을 찾아볼 것. 현재 인기보다는 살아온 세월과 이뤄온 업적이 남다르고 '얘기'가 될 것. 하지만 전국을 찾아다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면이라는 제약 때문에 독자들에게 그들의 얘기를 다 들려주진 못했다.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보며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와 후일담, 짧은 만남보다 길었던 여운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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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좀 합시다

명사들 대부분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는 편이었다. 물론 "당분간 언론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며 냉정하게 거절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장 '모시기' 어려운 인터뷰 상대는 연예인이었다. 더구나 연예기획사에서 모든 일정을 통제하는 시스템에서는 더욱 그렇다. 몇번의 실망을 거듭한 뒤에야 '스케줄을 확인해보고 연락주겠다'라는 매니저의 말이 거절의 의미임을 깨닫게 됐다.

연예인이 'OK'를 했더라도 기획사 측에서 인터뷰를 무산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작가 활동과 해외 기아 어린이 돕기 운동까지 하고 있다는 탤런트 A씨. 지인을 통해 어렵사리 알아낸 연락처로 전화를 하자 그는 "인터뷰를 하겠다"며 담당 매니저와 일정을 잡아보라고 했다. 매니저와 몇번의 통화가 오갔지만 거기까지였다. 기자도 꾀를 냈다. 온갖 인연을 동원해 섭외에 나섰다. 대구 공연을 앞둔 가수나 배우들은 '공연 홍보'를 빌미로 지역의 기획사를 통해 요청하고, 이미 인터뷰를 했던 명사를 통해 부탁을 하거나 지역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는 경우 학교 측을 통해 섭외하기도 했다.

◆특명, 속내를 끄집어내라

인터뷰는 무조건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전화나 e메일의 경우 대개 '날것'의 생동감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미리 기본적인 질문을 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실제 인터뷰는 다른 내용으로 진행했다. 62명의 인터뷰 상대 중에 단 한 사람의 예외가 가수 조용필이었다.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얘기에 e메일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답변은 단 두 줄을 넘지 않았다. 질문보다 짧은 답변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왜 'yes' 혹은 'no'인지 기자가 직접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매체를 통해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 실제로는 '아니올시다'였던 이도 있었다. 인터뷰 내내 지었던 심드렁한 표정까진 참을 만했다. 하지만 부족한 시간 탓에 추가 질문을 e메일로 보내기로 하고 인터뷰를 끝내기로 한 게 실수였다. 그가 보낸 답장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인터뷰 자료를 모두 모아 보냈던 것. 알아서 찾아 쓰라는 뜻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지면에 실을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지만, 급박한 마감 시간과 대체할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할 시간적 여유가 없던 탓에 지면에 실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기사라는 게 사실 거의 뻔한 내용들일 수 있다. 속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질문, 남들이 묻지 않았던 기발한 질문을 생각해내야 했다. '만약 새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UFO를 믿는가' '전생에 무엇이었던 것 같은가' '자동차 오디오에는 어떤 CD가 꽂혀있는가' '사후 세계를 믿는가' '행복한가' 등의 질문은 그렇게 나왔다. 황당한 질문 탓인지 답변도 당황스러워 대부분은 지면으로 옮기지 못했다. 보도사진의 대가 김희중씨의 답변은 유독 뇌리에 남는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가 있다면 무엇을 찍고 싶으세요?" 그의 대답. "진실한 마음을 찍고 싶어요. 사랑한다 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인지를 말이에요."

◆남겨진 이야기들

사실 인터뷰 이후 계속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디까지나 기자와 취재원의 만남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재즈가수 나윤선과의 만남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사가 나간 후, 나윤선의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10월 30일 경북 군위 공연에 꼭 오라는. 하지만 이미 객석은 매진이었다. 공연 당일, 아쉬움을 달래며 집에서 쉬고 있던 기자에게 나윤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공연 안 오셨어요?" "표가 없다고 해서요." "어머, 저희는 당연히 오실 줄 알고, 계속 기다렸는데요." 한참을 미안해하던 그녀는 이틀 뒤에 열리는 경기도 가평 공연에 오라고 했다. 대구에서 가평은 차로 5시간 거리. 한동안 망설이다, 덜컥 '가겠노라' 약속을 해버렸다. 먼 길을 달려 찾아간 무대. 그녀가 "아주 멀리 대구에서 오신 분도 계시네요"라며 기자의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어 줄 때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며 '팬'과 '스타'로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인터뷰 상대에게 대단히 호의를 느끼며 기사를 썼는데도, 다른 느낌으로 읽히는 바람에 당황한 경험도 있다. 드라마 '태양의 여자'의 김인영 작가. 그녀의 밝고 재치있는 모습은 1시간 30분이 짧을 정도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자 김 작가는 "주변에서 기자가 자기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며 기사를 쓴 것 같다고 한다"며 "자신도 일정부분 동감한다"고 말해 크게 당황했다. 이렇게 억울할 데가 있나.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기사가 나간 후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기사 내용에 낸시랭이 투병 중인 어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한 부분을 트집잡았다. 한참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는 딸을 두고 거친 말을 쏟아내 오히려 기자가 당황했다. MC 남희석은 "대구에 지인이 있어 자주 내려오는데 수성못 인근 ○○막창집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대구 내려오면 꼭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못다한 이야기들

인터뷰는 보통 1시간 30분~2시간가량 진행된다. 녹음한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면 원고지 120매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실제 지면에 반영되는 원고는 25~30매. 4분의 1로 축약하다 보니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해 아쉬운 내용도 적지 않다.

MC 김제동은 인터뷰 도중 "스타가 되기 전에는 '길거리를 편하게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스타들을 보면 소주잔을 집어던졌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작가 이외수는 '죽음'에 대해 '인간 의식의 고향인 우주로 떠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몸이라는 물질적인 요소는 지구에서 얻은 것이니, 지구로 돌려줘버리고 우주에서 얻은 의식·정신의 요소는 우주로 되돌려주는 과정이 오겠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은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사실 기자는 그의 강고하고 극단적인 이분법적 논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감조차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보수'의 논리를 갖다붙이는 이들과는 달랐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확신범'이라고나 할까. 그가 사회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하고 단순했다. 우리나라는 헌법세력과 반헌법 세력으로 나뉘고 좌파는 반북좌파와 친북좌파로 구분된다는 식이었다. 또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회복이 아니라 '안보'라고도 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반도에서 휴전선 남쪽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KBS 단박인터뷰를 진행했던 김영선 PD의 이상형은 '편하고 친구처럼 지내면서 제 일을 이해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인터뷰할 당시 소개팅으로 몇번 만난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녀가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게 보냈으려나?

◆대구는 군더더기 버려야

그들을 만나며 빠지지 않았던 질문은 '당신은 행복한가?'였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된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말했다. "현재는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돼서는 안 돼. 우리가 아름다운 정원에서 꽃을 볼 때 왜 보는 거야? 이 꽃을 봐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이유가 있나? 그냥 아름다우면 그뿐이지. 사람들이 근심 걱정이나 불안, 스트레스의 실체는 대개 과거 아니면 미래야. 그건 사실은 없는 거야. 유령 같은 것에 고통받으며 사는 거지."

청교도처럼 살기로 유명한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바라보는 인생은 어떨까. 그는 '유흥도 멀리하고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사는 게 피곤하진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게 참으면서 어떻게 사느냐고도 하는데요. 그런데 저는 참으면서 살지는 않거든요. 제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게 20년인데, 20년을 참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게 제게 편한 삶의 방식이에요. 누구를 의식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제 방식대로 산 거죠. 마치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가 주위가 소란스러워 둘러보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더라는 느낌이죠."

그들은 대구에 대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작가 이외수는 말했다. "저는 좀 놀면서 살자고 말하고 싶어요. 여유롭게. 대구 사람들이 번거로운 것, 군더더기 싫어하잖아요. 밥은 묵었나, 아는, 자자. 그렇게 멋있는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가 되면 좋지 않나. 잡다한 것 신경쓰지 말고. 그럼 저도 자주 놀러가고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충고는 좀 더 구체적이다. "경상도 정서가 간단한 걸 좋아해요. 논리적이기보다는. 그 정서와 기질상 내가 '우리편'이라고 정리한 사람들에게 계속 투표를 하는 거죠. '내 편'을 배신해야 한다는 그런 정서 때문에 한나라당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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