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못다한 이야기] 조문호가 만난 사람들

◆너무 많이 알아도 골치

인터뷰 대상을 섭외해 약속이 정해지면 먼저 '뒷조사'에 들어간다. 대상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해야 할 질문'과 '안 해도 될 질문'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터뷰어나 인터뷰 대상자 서로가 편하다. 그런데 인터뷰 상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도 인터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막상 새로운 질문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은 더욱더 그렇다. 발레리나 강수진(41)씨가 그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인 만큼 그녀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특히 서울의 한 일간지가 지난해 그녀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던 상태. 고심 끝에 인터뷰 내용에는 전반적인 사실을 담고 인터뷰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을 확인하는 것으로 정했다.

가수 양희은(56)씨와의 인터뷰도 그랬다. 가수로서 소녀가장을 했고 나이 들어서는 암 투병을 했으며, 남편도 투병 생활을 했다. 더구나 양희은은 게스트의 모든 것을 파헤치기로 유명한 '무릎팍 도사'(MBC TV)에도 출연했던 차였다. 질문을 엄선했는데도 늘어지는 인터뷰에 피곤해 하던 양씨. "'이런 걸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의 구원 요청을 "그건 인터뷰하는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라며 단칼에 내쳤다. 다시 인터뷰한다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그때의 삶을 되돌리고 싶은지'를 묻고 싶다. '가수가 아니라면 어떤 삶을 선택할지'도. 그래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였다.

◆인터뷰 때문에 물을 건너다

기자가 만난 12명 가운데 '물 건너가' 한 취재가 있다. 그렇다고 외국은 아니고 제주도에서였다. 지난 9월 3일 제주도 중산간의 한 전원마을에서 장길연(33)씨를 만났다. 2005년 1월 KBS 2TV '인간극장-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출연한 그녀는 나름대로 '유명인'이었다. 원래 남편인 박범준(35)씨도 함께 만나려 했지만 아쉽게도 불발. 박씨는 당시 서울 출장 중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9월 16일 오후 전화로 했다. 박·장(朴·張) 부부와의 인터뷰는 기자가 올해 한 인터뷰 취재 가운데 ▷최장거리 ▷최장시간(기다린 시간까지 약 4시간) ▷최다 비용(비행기삯 때문)이 소요된 것이었다. 세계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디지털 시대에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부부의 삶 철학은 간단했다.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서울을 떠나 대전을 거쳐 무주로, 그리고 광양을 거쳐 제주까지 흘러 들었다고 했다. 사실 유목민의 삶은 고달프다. 남는 것이 없다. 두 사람 모두 넉넉한 살림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시의 영혼이 그렇듯 박·장 부부는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어려움도 다양해

뜻밖의 장소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지휘자 금난새(61)씨 때가 그랬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3월 6일 이동 중인 승용차 안에서 이뤄졌다. 계명대에서 열린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가야 하는 그와 일정을 맞추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인터뷰는 그가 묵었던 호텔의 커피숍에서 10여 분을 포함해 대략 50분간 진행됐다.

박영숙(53) 주한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의 인터뷰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1층에서 했다. 식기 부닥치는 소리에 손님들의 대화, 로비에서 울려 퍼지는 신발 소리 등 소음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국에 많지 않은 미래학 전문가로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에 미래가 없다. 출산 장려만이 살 길"이라고 역설하는 그를 통해 새삼 한국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자리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분청사기 도예가 윤광조(62)씨 인터뷰는 이미지가 많이 남았다.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한 거처로 가며 이용한 28번 국도 주변의 자연 풍광, 산자락 끝에 배산임수 형태로 위치한 '급월당(汲月堂)' 등. 따끈한 차 한잔과 함께한 윤씨와의 인터뷰는 창을 통해 스며드는 이른 봄 햇살의 따사로움으로 남았다. 선문답 가득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기억으로 남았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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