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과 인접한 경북과 강원도 시·군들은 최근 한 이벤트업체로부터 당혹스런 경고를 받았다. '해맞이'와 '해너미'에 대해 상표 등록을 했으니 지자체에서 '해맞이'와 유사한 용어를 쓰거나 다른 이벤트업체가 쓰도록 허락할 경우 상표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내용증명(본지 11일자 6면 보도)이었다. 매년 해맞이 축제를 열어온 자치단체들은 축제이름을 아예 '해맞이'를 '해돋이'로 바꾸거나, 특허청에 질의를 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과연 이처럼 일반적으로 사용해온 단어들도 상표 등록이 가능한 것일까. 또한 누군가가 상표등록을 선점해 버렸다고 '해맞이 축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해맞이' 쓰지 말라고?
충남 지역에 주소를 둔 이 이벤트업체는 지난 10월 동해안 각 지자체에 내용증명과 서비스표 등록원부 등을 보내 '상표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해맞이' 혹은 유사한 형태의 표지를 라이브공연 등 연예업에 직접 사용하거나 제3자(행사대행 이벤트업자)에게 사용을 허락하는 경우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된다'는 것. '만약 상표권이 침해되면 법적 분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해맞이' 논란은 촌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특허청은 최근 '해맞이' 용어 사용을 둘러싼 일부 지자체의 질의에 대해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해맞이 축제'의 명칭 사용은 법적 하자가 없다"고 응답했다. '해맞이'가 상표 등록이 돼 있다 하더라도 '해맞이 축제'라는 단어는 제공하려는 서비스의 목적이나 내용을 뜻하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 특허청 관계자는 "'해맞이', '해너미'는 상표권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행사 내용에 해당할 경우 상표권 권리 범위의 밖에 있다"고 말했다. 만약 '해맞이'라는 단어를 공연업체나 연예기획사에서 업체 상호로 쓰거나, 지자체에서 해맞이라는 이름의 마스코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특허검색서비스로 검색해 보니 이 업체는 '해맞이'뿐만 아니라 '자갈치', '도자기', '광어', '단풍', '감귤', '대게', '육쪽마늘' 등 전국의 축제와 관련한 일반명사 40여개에 대해 상표권을 등록한 상태였다. 결국 비슷한 단어가 들어가는 전국의 축제에 상표권 침해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는 먼저 출원하는 이에게 권리를 주는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어떤 상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표권 등록을 한 사람에게 권리가 돌아간다. '먼저 등록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뜻.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분란도 적잖다. '신천할매떡볶이'나 '신천황제떡볶이'가 그런 경우. 동구 신천시장에서 유명했던 원조 '신천할매떡볶이'는 상표권 분쟁 끝에 '윤옥연할매떡볶이'로 이름을 바꿨고, '신천황제떡볶이'라는 간판으로 10년 이상 영업을 했던 업체도 상표권 논란 끝에 '황떡'으로 간판을 바꿨다.
상표 등록 전부터 유명하게 알려진 상호라면 실질적 권리를 인정해주기도 한다. 10년 넘게 법적 공방을 벌였던 '박소선 현풍할매곰탕'이 그런 예. 현풍할매곰탕은 박소선 할머니(작고)가 1945년부터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하리에 식당을 차리고 곰탕을 팔면서 맛있는 곰탕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왔다. 그러나 박할머니가 상표등록을 하지 않은 틈을 타 인근 상인이 1984년 '현풍할매'라는 이름의 서비스표 등록을 선점하면서 법정 분쟁이 잇따랐다. 법원과 특허청은 '현풍할매'라는 상표가 등록되기 전부터 곰탕의 대명사로 불렸을 정도로 잘 알려졌기 때문에 상표권 선점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상표권 등록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도자기, 감귤, 백합, 굴, 쌀, 은행나무처럼 일반적인 명사나 고유명사도 상표 등록이 될까. 답은 'Yes'. 상표권 등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동 여부다. 상품 혹은 업종과 상표가 유사한 관계가 아니라면 등록이 가능하다. 가령 '애플컴퓨터'처럼 '애플'이라는 일반 명사와 '컴퓨터'라는 상품이 별다른 관계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자동차', '나는 비행기'처럼 성질을 표시하는 경우는 등록이 안 된다. 또한 상표 하나로 전 업종에 대해서 상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상표라도 지정 서비스업이 같거나 비슷해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지리적 표시에 해당하는 표장(標章·무엇을 표시하기 위한 단어 또는 부호, 휘장)도 상표권 등록을 할 수 없다.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을 경우 특정업자에게 상표권을 주면 다수가 간판을 내려야하기 때문. '맛있는 안흥 찐빵'이란 이름으로 상표출원한 고모씨와 횡성군 사이에 벌어진 상표권 소송에서 법원은 횡성군의 손을 들어줬다. '안흥찐빵은 안흥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명성을 얻은 대표 상품이며 횡성이 주산지로 알려져 있는 지리적 표시에 해당돼 특정업자에게 상표권 등록을 허가할 경우 혼동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상표권 분쟁 피하려면?=상호를 정하기 전에 미리 유사한 상표가 등록돼 있는지 사전에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특허정보원이 운영하는 특허정보검색서비스(www.kipris.or.kr)를 이용하면 된다. 검색창에 상호를 입력하면 등록여부와 세부 내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검색서비스와 실제 등록 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특허청 홈페이지에서도 상표 공보를 검색해 보는 게 좋다.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다면 등록 상표에 하자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미리 등록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 지정서비스업종이 다르거나 무효, 취소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상지은 변리사는 "상표권 침해를 경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더라도 얼토당토않은 경우도 있다"며 "3년 이상 사용한 적이 없는 상표는 취소심판 청구를 제기할 수 있고 저명상표, 오인상표, 식별력 없는 상표, 상표 미사용 등 다양한 취소·무효 사유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사용료를 주지말고 신중하게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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