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인데펜던스 데이' 등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거대한 비행체가 도시 상공을 배회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도시를 덮을 만한 가공할 비행체가 지구의 위기를 잘 보여준 영화였다.
그런데 '지구가 멈추는 날'의 외계인은 희한하게 지구인만 죽이겠다고 덤벼든다. 인류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지구인은 바이러스에 불과하다. 지구를 갉아먹고, 종래에는 지구를 통째 멸망시킬 암적인 종(種)이다. 그런데 지구인이 없는, 지구가 과연 의미가 있나, 외계인은 왜 지구를 지키려고 하는가?
'지구가 멈추는 날'의 시작은 이처럼 창대(昌大)하다.
전 남편의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는 우주 생물학자 헬렌(제니퍼 코넬리)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부 기관 요원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지구의 위기를 듣게 된다. 외계로부터 미확인 비행물체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충돌하면 지구의 생명도 끝이다. 그러나 미확인 비행물체는 속도를 줄여 뉴욕 센트럴파크에 내려앉는다. 그 속에서 사람의 외모를 가진 클라투(키아누 리브스)라는 외계인이 걸어나온다.
클라투는 각국의 정상들과 회담을 요청하지만 무시당하자 탈출한다. 헬렌은 자신을 찾아온 클라투가 행성 지구를 살리고자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클라투를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한편 미국 정부는 국가의 모든 전력을 투입해 수수께끼를 파헤치려고 하고, 외계인의 먼지처럼 작은 나노 로봇은 인류가 만든 거대한 구조물들을 집어삼키며 인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하고 마이클 레니가 주연했던 동명의 1951년산 SF 클래식을 리메이크했다. 제작비 8천만 달러를 들여 현대적 볼거리로 충전했다.
그러나 속셈은 참으로 빈약하다. '지구가 멈추는 날'이 갖는 상상력은 50년 전보다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겉멋만 들인 심각한 환경주의로 관객을 우롱한다. 인류와 자연의 공생에 대한 대안도 없이, 위기만 고조시킨다. 물론 인류의 파괴 본능은 심각하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애니메이션 '월 E'를 비롯해 숱한 영화에서 경고한 이미지이다.
소위 블록버스터라면 볼거리와 함께 짜임새 있는 줄거리, 설득력 있는 결말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지구의 생명줄을 손에 쥔 외계인 남자는 지구인 여자의 지구애정에 감복해 간단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지구는 계속 돌아간다.
그때까지 관객은 두 주인공의 실현가능성 없고, 긴장감 없고, 초점 없는 대사에 진저리를 치고, 몇몇 특수효과로만 블록버스터의 체면을 다한 듯하는 감독의 뻔뻔함에 치를 떤다. '매트릭스'의 심각한 표정을 그대로 복제한 키아누 리브스 또한 지구를 지키려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 채 작업을 끝맺는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시작은 창대하나, 결말은 미미하고, 관객은 허탈하다. 감독은 '헬레이저5'(2000년)를 만든 스콧 데릭슨이다. 12세 관람가. 106분.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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