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배고팠던 그 시절이 왠지 그리워진다

아버지가 직접 만드신 호롱불대로 위에는 등잔을 올리고 밑에는 재떨이로 사용하게 만드신 호롱불이었었다. 평소엔 어두침침하게 살다가 섣달 그믐이면 등잔이란 등잔은 모조리 동원되고 특별히 방에는 양초가 들어오고 등잔은 마루나 창고로 쫓겨 나간다.

왜 이날은 불을 훤하게 밝히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둠을 싫어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밤이다. 낮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으신 여러 가지 음식을 잔뜩 먹고 배도 부르고 내일 아침에 혹시 새 옷을 얻어 입을까, 밤새 잠도 못 자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웃 어른들과 노시다가 옆에서 버티다 슬그머니 잠들어버린 어린 손녀들에게 밀가루 반죽으로 하얗게 눈썹을 칠해 놓아 정월 초하루부터 울음으로 시작하게 하였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정한수 떠놓고 일일이 자손들 나이를 나한테 물어가며 무탈하게 한 해를 지나도록 기도하셨다. 그러니깐 다른 동생들은 노는데 나만 할머니 곁에서 나이를 챙겨 드리는 게 귀찮기도 했는데 지금의 나도 아이들 나이가 몇 살인지 가물가물하니 할머니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내 어릴 적, 섣달 그믐에는 정겨움도 있었고 이웃을 차례차례 돌며 집집마다 인사 다니고 조금씩 먹어도 여러 집 음식을 먹은지라 배도 엄청 불렀다. 지금은 모든 게 넘치는 세상인데 오늘따라 배고픈 그 시절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전병태(대구 서구 평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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