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공무원의 공금 해외연수

저녁 늦게 귀가하던 상하이의 모씨,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분홍색 서류봉투 하나를 발견한다. 윗부분에는 앙증맞게 나비모양의 봉인까지 되어 있다. 안에는 저쟝 원조우(浙江 溫州), 쟝시 신위(江西 新余)의 관료들과 쟝수 장쟈강(江蘇 張家港)의 관료부부들로 구성된 미국시찰단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들어 있다. 내용을 훑어보던 모씨, 눈 씻고 찾아도 공무와 관련된 사항이 전혀 없는 공무원의 해외시찰일정에 분개한다. 그리고 너무나 꼼꼼하게 정리된 적나라한 사실들을 보고 경악한다. '평생 낸 세금이 해외시찰단에게 모이 준 꼴이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느낀 모멸감을 네티즌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한다.

금년 4월, 11명의 관료들로 구성된 신위시 인력자원부시찰단이 해외순방을 떠났다. 명분은 시정부의 기능인력양성과 첨단산업우수인재선발을 위해 선진제국의 경험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찰 항목을 보면, 14일 동안의 일정 전부가 백악관, 자유의 여신상 등 10여 군데의 북미지역 관광명소 일색이다. 이 정도는 양호하다. 지난해에는 공무원해외시찰 때문에 국제적 망신을 사고 해직된 자도 있었다. 안후이성 인민검찰원부원장을 포함한 10여명의 공무시찰단이 그들이다. 위조된 초청장을 들고 폴란드에 입국하다가 공항에서 적발되어 입국금지된 것이다.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 당시 폴란드 출입국관리소 인사 왈(曰), "중국 당국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도 만약 앞으로도 이렇게 폴란드를 놀린다면 다시는 중국 사람을 입국시키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무원의 공금해외여행은 구실도 가지가지이다. '연수'가 가장 많다. 지난해 국가외국전문가국(局) 해외연수처(處)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 공무원의 해외연수는 현재 30여개 국가으로 파견되며, 그 중 미국과 싱가포르를 가장 선호한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1980년대 초부터 시정관리학습을 위해 국립대학 위주로 공무원연수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무원들의 출국이 많아지면서 사립대학들까지 초청장 발급에 나서게 되자 연수가 아니라 출국을 위한 구실로 전락해버렸다. 미국 연수일정도 마찬가지다. 초청장과 일정은 국가규정에 맞추지만 실제 연수는 3일도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여행이다. 둘째로 많은 것이 '투자유치단'이다. 남아프리카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화교 이위(李玉)의 말이다. "투자유치단의 8일 일정은 실제 반나절이면 끝난다. 일반적으로 도착하자마자 해당지역의 화교들을 만나 좌담회를 하고 투자유치설명회를 하고는 귀국해서 몇 천만 위안의 계약을 했다고 발표한다. 그 외는 전부 즐기는 시간이다." 셋째는 '학술회의'이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종 수법인데, 민간단체와 함께 가기 때문에 관료의 색채를 감출 수 있어서 훨씬 자유롭다.

다양한 구실만큼 하는 행실도 다양하다. 북미연수의 필수코스는 라스베이거스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미국에서는 도박장과 홍등가가 합법적인 오락장소에 속하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마땅히 그 실상을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도박장을 나온 후에는 명품과 보석쇼핑으로 이어진다. 특히 아프리카 연수단의 경우는 필수적으로 몇 알의 다이아몬드를 구매한다. 중국 국내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부문의 통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연수에서 공무원 개인의 소비는 평균 5만위안(1천만원), 연수단 전체는 연간 적어도 5천만위안(약 100억원)의 공금을 지출한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인을 표적으로 한 강도사건도 빈발하다. 명품구매연수는 주로 유럽연수에서 이루어진다. 20여명의 유럽연수단이 12일 동안 유럽을 배회하면서 사들이는 품목에는 필수적으로 스위스산 로렉스 시계, 암스테르담의 다이아몬드,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가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돈을 물 쓰듯 하는 중국 공무원의 공금연수,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대국 중국의 체면 살리기에는 한몫을 톡톡히 한다. 올해 6월 금융위기로 인해 파산지경에 있던 미국에 쟝수 장쟈강의 시장들과 그 부인들로 구성된 연수단이 도착했다. 이미 초청장 한 장에 3천240위안(약 64만원)을 지불한 그들, 보름가량 체류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중국 돈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공금을 공무(空務)에 쓰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의 중국 공무원들, 주인정신(?)이 너무 강해서인가? 그러나 이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스위스의 휴양도시 인터라켄 민박집 벽에 빼곡하게 붙어 있던 한국 공무원들의 명함이 새삼스러운 것은 다른 의미일까?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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