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지내는 선배가 둘 있다. 아니 이제는 한명만 남았다. 다른 한 선배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으니까. 몇 년 전 작고한 K라는 선배는 학창시절부터 '순진한 남자'로 놀림과 칭찬을 함께 받던 사람이고, 지금도 현역으로 쩌렁쩌렁한 M선배는 '정의파 남자'로 인기를 끌었다.
유달리 가깝던 이 두 선배는 직장도 같은 곳을 얻었다. 쌍둥이 같은 선배들이었다. 우리나라에 민주화 바람이 불고, 직장마다 노조설립이 한창일 때 M선배는 노조위원장이 되어, 우리 앞에 나섰다. 모두가 당연하다며 긍정했다. 그 선배는 더욱 정의로워 보였다. 그 시절 우리나라 기업주들의 횡포는 오죽했는가. M선배는 동료들의 불이익을 온몸으로 대변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M선배가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K선배도 해고됐다는 비보를 들었다. K선배는 절친한 단짝 친구가 회사를 떠나자 아무것도 모르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싸우다가 쫓겨난 것이다. 참 보기가 측은하면서도 아름다웠다. K선배와 M선배 주변에는 그 많던 회사 동료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학창시절부터 집념의 사나이로 불리던 M선배는 끝까지 법으로 대응해 둘은 다시 복직했다.
그리고 회사 대표는 노동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M선배는 영웅이 됐다. 특히 M선배가 회사를 떠나 있을 때 멀리 서있던 심약한 직원들일수록 더 선배 가까이 다가갔다. 회사 주인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단 한 마디의 의사표현도 못하던 직원들이 '정의의 사자'로 표변하는 인원이 늘어났다.
그러나 주변에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M선배는 '양다리 직원'들의 대변자일 뿐이라고. 특히 법정관리 사장과 M선배가 대립각을 세울 때, 그 선배는 자신의 지지파를 한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누가 봐도 회사를 떠나야 할 직원들과도 가까이했다.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선배 가까이는 이런 명분 없는 직원들만 남았다. 당연히 K선배는 그 선배 곁을 떠났다.
또 시간이 얼마 흘러, M선배는 법정관리 사장과의 싸움에서 불리해지자 오래 전 자신이 내쫓았던 사장을 찾기 시작했다. M선배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도덕적이라는 신념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해 갔다. K선배는 이를 상심해서 큰 병을 얻고, "우리 M은 정의를 부르짖다가 이제 복수심만 남았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먼 나라로 갔다.
정의감으로 시작한 일이 복수심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특히 지도자의 생각이 이처럼 변질될 때 그 불행의 깊이가 얼마나 깊을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하다.
서동훈(대구미래대 영상광고기획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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