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 기자의 인물산책] 국무총리실 권태신 사무차장

배꼽 쥘 준비됐나요 'Mr. 재담'

국무총리실 권태신(59) 사무차장의 경력을 살펴보면 청와대 근무가 유독 많다. 노태우 정권 때 경제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처음 근무했고, 김영삼 정권 때는 경쟁력강화기획단, 김대중 정권 때는 산업통신비서관, 노무현 정권 때는 정책기획비서관과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냈다. 무려 네번이다.

영천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권 차장은 "청와대 근무 횟수에선 아마 기록일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처럼 청와대에 자주 불려다닌 이유는 금융, 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풍부한 식견 덕분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권 차장은 외국 생활도 많이 했다.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했고, 영국 시티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했다. 주영 한국대사관 재경관 2년,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표부 대사 2년4개월 등 역시 네번이나 된다.

그는 재담가(才談家)로 유명하다. 어떤 모임에서든 질펀한 얘기로 좌중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났다. 왜 웃기고 어떻게 웃기느냐고 물었더니 권 차장은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국제 회의를 하는데 경제 13위인 한국 대표가 미국, 영국보다 더 빨리 발언하면 곤란해진다. 그렇다고 13번째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개 끼어들기해 7, 8번째 마이크를 잡는다. 그 때쯤이면 회의가 길어져 지겨울 때고 게다가 한국이란 조그만 나라 대표의 발언이라 관심도가 떨어진다. 한번 웃겨야 내 말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영어판 '와이담'을 준비한다.

2003년 멕시코에서 G20 재무장관 회의를 할 때였다. 마이크를 잡은 권 차장은 "모든 딸들은 아빠를 닮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모든 엄마들은 슬퍼서 우는 듯하다"고 운을 뗐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특히 미국 대표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좀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린스펀이 내 농담을 빨리 알아듣는 것을 보고 '가정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정말 이혼하고 나이가 30세 적은 비서와 재혼했더라고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회의 때의 일화.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 사람이 미국 비행기 1등석에 탔다. 스튜어디스가 'Are you vegiterian?"(당신 채식주의자냐)이라고 물었는데 그 한국인이 'No. I am korean'(아니, 난 한국사람입니다)이라고 답했다." 좌중은 웃음바다를 이뤘고 회장인 영국 대표는 "지금부터 한국 대표는 아무 때나 발언해도 좋다"고 화답해 좌중을 또 웃겼다.

권 차관에게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고 묻자 "13세까지 뇌에 언어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에 일찍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잘할 수 있다"며 고교시절 영화회화 클럽 얘기를 했다. 김범일 대구시장,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문동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 등이 같은 회원이었는데 모두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대구경북 얘기가 나오자 권 차장의 표정이 심각해지며 통계표를 꺼내 들었다. "대구경북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이 1995년에 6.6%였는데 2006년에는 4.6%로 떨어졌어요. 1인당 GRDP는 그때나 지금이나 꼴찌고요. 1990년에는 호남(360만4천원)보다 대구경북(438만3천원)보다 훨씬 높았는데 2006년에는 호남 1천717만원 대구경북 1천651만원으로 역전됐어요. 15년의 소외가 지독하긴 지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 대구경북에 기회"라고 했다. "국가든 지역이든 경제위기가 끝나고 난 뒤의 호황기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 때 역전을 할 수 있어요. 장기적으로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프로젝트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발굴 육성해야 대구경북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치를 들고 있는 녹색성장에 대해 "전 세계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면서 "대구경북도 그린에너지에 좀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정치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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