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세모의 용서(恕)와 분노(怒)

저무는 한해 맘속 모든 부정 허물 해맞이 길에 모두 덮고 용서하자

어느 여류 소설가가 성낼 怒(노)자와 용서할 恕(서)에 대해 이렇게 풀이한 글이 있었다. 怒와 恕 두 글자는 모양새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노여워하고 성낸다는 뜻의 怒는 마음 心(심)위에 노예 奴(노)자가 붙여져 있다. 從(종)이 내 마음 위에 거꾸로 군림하니 자신의 마음을 제 맘대로 하지 못하고 노예처럼 종속돼 있다는 풀이다.

마음이 노예처럼 욕심과 불만, 슬픔, 배신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예속돼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니 성내고 분노하게 된다는 의미다.

반대로 용서한다는 恕자는 마음(心) 위에 같을 如(여)자가 붙여져 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아(如)지면 서로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풀이다.

새해 새 지도자를 뽑아놓고 이제는 뭔가 밝고 희망찬 꿈을 이루려니 하고 출발했던 한 해가 위기의 벼랑 끝에서 암울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저물어가고 있다. 장밋빛 희망과 무지개 꿈으로 출발했던 한 해의 끝이 어느 해보다 더 큰 좌절과 절망으로 끝나가는 이 歲暮(세모)에 남에게든 스스로에게든 분노할 것인지 용서의 마음을 가질 것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가족과는 얼마만큼 마음을 같이했던가? 이웃과 직장에서는 분노하고 얼굴 붉혔던 적은 없었던지 떠올려보고 '같은 마음'이 돼 용서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했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도 되돌아보자.

이기적 욕심보다는 利他(이타)적인 삶의 관점을 지니려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도 떠올려 보자. 경쟁, 야망 같은 慾心(욕심)의 노예가 되느라 같은 마음을 가져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지도 생각해 보자. 어느 초등학생이 냈다는 5-3=2와 2+2=4 수수께끼 비유도 세모에는 귀담아 새겨볼 만한 작은 삶의 철학이다. 5(오)해도 남의 입장에서 3번 생각해 보면 2(이)해가 되고, 2(이)해하고 또 더 2(이)해하면 상대를 4(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인터넷 얘기다.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이 유난히 예년보다 많았다는 소식도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힘든 이웃이 더 많으리라는 '이해', 내가 궁핍한 만큼 어려운 이웃은 더 모자랄 것이란 '이해', 그런 '같은 마음'이 어우러져 사랑의 마음이 더 모아졌을 것이다.

그런 같은(如) 마음(心)이 일궈낸 사랑과 이해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저무는 세모, 우리 곁의 모든 잘못, 부정, 실망들은 다 용서하고 묻고 가자.

단 한 가지 국회만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국민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해서다. 이쪽 마음은 묻어주고 가고 싶어도 그 사람들의 마음이 끝까지 민심과 따로 노니 어쩔 수 없다.

마음이 당략과 정치적 陰慾(음욕)의 노예가 돼 있으니 성낼 줄밖에 모르고 가슴속에 분노가 가득하니 손발이 폭력을 부릴 수밖에….

2008년 세모, 3류 조폭 같은 국회만 빼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덮고 해돋이 새벽길을 떠나자. 그리고 새해엔 삶의 觀點(관점)도 바꿔 보자.

예를 들면 이런 일화 같은 것이다. 도시에서 성공했다고 자부한 부자아빠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 주겠다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2, 3일 머문 뒤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니?"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네, 우리 집 수영장은 마당 안에만 있는데 그 사람들은 개울이 끝없이 길더라고요. 우리 정원엔 수입 전등뿐인데 거기는 밤하늘에 온통 별이 총총하고요. 또 우리 집은 하인이 도와주는데 그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고, 우리 집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우린 음식을 사서 먹는데 그쪽은 길러서 먹더라고요…." 멍해진 아버지에게 아들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고마워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지 알게 해줘서…."

관점이 바뀌면 절망도 꿈이 됩니다.

…새해 독자 여러분의 큰 소망 두루 이루시길…

金廷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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