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이 추억속으로 묻혀갈 채비를 하고 있다. 2008년을 돌아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내뱉는 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Too Bad To Forget!)"
그랬다. 2008년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
펀드에 넣어뒀던 돈은 '퍽' 하는 소리도 없이 반토막이 났다. 금융불안으로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돈 빌린 사람들은 울었고, 기업들도 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달러와 엔화값이 갑작스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이중고를 앓았다.
◆먼지도 없이 사라진 내 돈!
대구시내 한 은행에 근무하는 이모(43)씨. 돈의 흐름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이씨는 올초 아내가 타온 곗돈 2천만원을 주식형펀드에 넣었다. 그런데 올 1/4분기 말부터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내림세로 돌아섰고 이씨의 펀드 수익률도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의 '고점'에서 펀드 가입을 했던 이씨. 이달 현재 이씨는 펀드 원금의 50% 정도를 까먹었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아내에게 정말 부끄럽데요. 아내가 이따금 '괜찮겠어요?'라고 물어올 때 '내가 잘 안다. 괜찮다'고 얘기했던 것이 더 큰 화근이었죠. 손절매 시기도 놓쳤습니다." 이씨는 돈을 잃은 것도 부끄럽지만 금융인으로서 예측 능력이 형편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올해 '폭탄'으로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을 초토화시키면서 국민 재테크로 성장한 펀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한 사람들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열풍에 몸을 실었던 사람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일부 러시아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80%에 육박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불과 열흘 사이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들이며 열풍을 불러왔던 인사이트 펀드 역시 원금의 절반이 깨졌다.
주식형펀드의 설정액과 운용수익을 더한 순자산액(NAV)은 올 한해동안 모두 55조여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전체 주식형펀드 순자산액은 이달 중순 기준으로 81조여원으로 지난해 말 137조원에서 50조원 이상 급감했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액은 20조원가량이 감소한데 비해 해외 주식형펀드는 33조원이 줄어 해외펀드 투자자의 손실규모가 적지 않음을 반영했다.
대다수 펀드가 반토막 신세로 추락하고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환헤지 여부가 펀드 수익률을 더욱 추락하게 하면서 분노한 투자자들은 객장이 아닌 법원으로 달려갔다. 불완전판매 시비가 일어나면서 투자자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우리파워인컴펀드' 관련 분쟁과 관련, 판매사가 손실금액의 50%를 배상하라는 결정까지 내렸다.
직접 투자자들도 땅을 쳤다. 지난해 10월 코스피지수는 2,000선을 넘어서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코스피는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10월 24일 연중 최저치인 938.75까지 떨어지면서 1천선을 깨어먹었다. 2007년 10월 31일 기록한 코스피지수 사상 최고치(2,064.85p) 대비 54.54%나 하락한 것이다.
◆제발, 돈 좀 구경시켜주세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인 미국이 신용경색에 빠지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가 돈가뭄을 겪었다. 돈이 귀해지자 빚을 낸 사람들은 갑자기 올라간 금리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고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했다.
심지어 은행들마저 곳간에 돈이 없어 '돈 찾아 삼만리'를 해야 했다.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CD금리는 금융위기가 심화되던 10월에 6%를 훌쩍 넘어서면서 빚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들의 가계대출 잔액은 383조6천억원. 이중 주택담보대출이 234조6천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일시상환 대출의 만기가 보통 3년이고 2005, 2006년 대출이 급증한 점을 감안할 때 내년에 만기 금액이 40조~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 거치기간이 끝나 원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대출은 올해 17조4천억원에서 내년 33조5천억원으로 급증한다. '빚 폭탄' 터질 날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끌어올리기에 비상이 걸리면서 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했다. 은행들은 이달 말 기준으로 자기자본비율을 11, 12%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반기들어 신규 대출을 억제해왔다.
◆환율, 너무 뛰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돈의 가치만 올려댔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적 약소국'의 통화는 엄청난 가치하락을 겪은 것이다.
여름까지만해도 1,000원 선에 있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몰락 이후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해 연말 1,500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달러화는 연고점(11월 21일, 1,525.00원) 기준으로 588.90원 급등했다. 지난해 말 900원 선 부근에 있던 달러값이 1,500원까지 치고 올라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입업체는 올라간 환율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수출업체들의 표정도 밝지 못했다. 달러값이 올라가면서 우리 금융회사들도 달러를 구하지 못해 수출환어음 처리 등 수출업무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수출업체들이 수출신용장과 선적서류 등을 제시해도 은행이 수출대금을 달러로 미리 지급하는 수출환어음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달러화가 급등하면서 환헤지 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던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키코는 일정 영역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환율이 변화해도 애초 지정한 환율대로 달러를 교환해갈 수 있지만 환율이 일정 부분 이상을 넘어 급등하면 처음 계약한 것보다 훨씬 높은 환율로 은행에 돈을 물어줘야하는 상품.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지난 10월 22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달러화 급등으로 인한 올해 기업들의 키코 관련 누적 손실이 4조~5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3일엔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와 4개 법무법인(대륙, 로고스, 안세, 프라임)이 96개 기업의 키코 관련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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