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엄마가 일본 사람이다. 나는 우리 엄마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엄마가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점이 하나도 없다. 한국 사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한국말 하는 것도 "저 일본에서 왔어요"라고 하기 전에는 모를 정도로 무척 잘한다. 한국 요리는 물론 일하는 것에서도 누구에게 뒤지는 법이 없다. 이 모든 면에서 볼 때 누가 과연 우리 엄마를 일본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지금 이렇게 엄마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건 아마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와 친구들의 편견,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일본 사람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애들은 "쟤 엄마 일본 사람이래"라면서 툭하면 걸고 넘어졌다. 물론 좋겠다 신기하다 부럽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혼혈이라는 것 때문에 심한 말을 한 그 소수의 친구들 때문에 나를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은 잊은 채 많은 상처를 가슴에 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 학년으로 올라갈 때마다 친구들은 신기하다는 눈길로 날 쳐다보며 "야! 네 엄마 일본 사람이냐?"라고 물어보았고 그 질문 다음에는 항상 "너 일본말 해봐!"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것이 점점 싫어졌고, 새 학년에 올라가는 게 두렵기까지 했었다. 선생님들의 눈길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학기 초가 되면 새로운 담임선생님들은 나를 따로 불러내서 물어보고는 '아 이런 아이도 있구나'라는 식의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친구가 자신의 부모님께 날 소개하는 말은 "엄마, 지성이 엄마 일본 사람이다!"였다. 그럴 때면 나는 친구들 부모님께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것들 때문에 엄마를 많이 원망하고 엄마 앞에서 나쁜 말도 많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도 많이 되고 엄마한테 죄송스럽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가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물론 원망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엄마가 일본 사람인 게 더 좋을 뿐이다.
내가 17년 동안 살아오면서 몇 년 동안이나 엄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의 사고를 바꿀 수 있게 해준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그 중 한 가지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참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어렸을 적 철없던 친구들은 나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많이 했었지만 이 친구들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우리 엄마가 일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부러움의 눈길로 나를 많이 쳐다봤었다. 아니 내가 그런 말만 들으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대놓고 친구들에게 일본말을 알려줄 수도 있고, 일본말을 해보라고 하면 거부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기쁘고 그 친구들에게 많이 고맙다.
또 한 가지 계기는 엄마가 우리 학교 일본어 교사로 일했다는 점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엄마는 우리 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일본어 교사로 활동을 했었다. 처음에는 '옆 학교로 가지 왜 하필 우리 학교에서 저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친구들이 일본어부에 들어 수업을 받은 후 "재밌었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가 괜히 더 우쭐해지고 뿌듯해졌다. 또 수업이 있는 전날이면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가고, "내일은 무엇을 하지"라며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엄마가 자꾸 대단한 사람 같았다. 남의 나라말로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그렇게 수업을 잘 해내신 것을 보니 엄마의 열정이 하늘을 찌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는 그런 엄마의 열정에 감복했다.
엄마는 중학교 교사 외에도 외국인들에게 13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오셨고, 올해부터는 다문화가정을 돕는 아동양육지도사로서 일하시게 되었다. 전국에서 일하는 지도사들 중 외국인은 5%도 안 되는데 거기에 우리 엄마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 집은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돈을 많이 벌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걱정은 요즘 들어 많아지고 있다. 아직 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동생이 있고, 나는 올해 고등학생이 됐는데 앞으로 대학도 가야 된다. 그런데 이 모든 비용을 부모님 월급으로 대기에는 빠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 때문에 걱정하시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일본에서 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고 훨씬 환경도 좋은 곳에서 일을 할 텐데 말이다. 또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들에게 잘해드린 게 하나도 없어서 슬프다.
우리 엄마에게는 다양한 재주가 참 많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는 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었지만 엄마처럼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한다. 엄마의 피아노 치는 모습은 정말 예쁘고 힘이 넘친다. 감히 내가 따라할 수 없는 모습이다. 엄마는 현재 교회에서 합창부 지휘와 찬송가 반주를 맡고 있다. 엄마의 반주에 맞춰서 부르는 찬송가는 활기차고 힘이 넘치며 즐겁다. 반면 엄마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안 하는 날이면 그날은 노래를 부르기는 부르는데, 왠지 모르게 서운하고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엄마는 과자 만들기도 수준급이다. 제과점만 안 냈을 뿐 맛은 거의 제과점 수준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쿠키와 빵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친구들 엄마들도 항상 그렇게 만들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주는 엄마는 우리 엄마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항상 친구들 앞에서 "우리 엄마는 쿠키랑 빵 자주 만들어준다"라며 자랑을 하고 다녔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가끔 우리 교회에서는 식구들을 상대로 바자회를 한다. 그럼 우리 엄마는 케이크나 쿠키를 만들어가서 파는데 엄마표 제과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우리 엄마는 여자로서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모든 점을 닮고 싶다. 절대 소심하지 않은 그 당당함과 적극성, 우수한 두뇌, 피아노 연주실력, 쿠키 만드는 실력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잘난 유전자를 많이 못 닮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아주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엄마는 내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나에게 많은 걸 배우게 해주는 사람이다. 엄마라는 그늘은 날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준다. 나는 엄마가 일본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상관없다. 엄마들에게는 자식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공통적으로 다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엄마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우리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주변에 놀고 있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를 볼 때, 자기 일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외국인이어서 못한다는 패배적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살려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엄마의 적극성이 오늘의 엄마를 있게 한 것 같다. 다른 외국인 가정도 엄마들이 우리 엄마처럼 깨어서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이지성(전남 화순군 화순읍·능주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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