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 ①교실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 다문화가정의 2세들은 엄마에게 2차적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 쓰기는 물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달서구의 한 결혼이주여성과 딸.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다문화가정의 2세들은 엄마에게 2차적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 쓰기는 물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달서구의 한 결혼이주여성과 딸.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도시와 농촌에 낯선 새댁이 온 지 10여년. 결혼이주여성이 1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2세들도 5만8천명에 이르고 있다. 그 2세들이 본격적인 학령기를 맞았지만 교육 혜택에서 소외돼 미래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아이들이 한글을 못 쓰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언어문제까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취재팀은 가슴에 '멍울'만 키우고 있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만나 실태를 진단해 보고 해결점을 모색해 본다.

◆나는 "외톨이"

필리핀인 엄마를 둔 초교 1학년 김성구(가명·8)군은 두세 마디 말로 하루를 버틴다. 누군가 말을 시키면 고갯짓으로 대답할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을 걸어도, 친구들이 장난을 걸어와도 "예" "아니오" "응" 등 3음절을 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구는 창밖의 풍경만 본다. 뭐가 궁금해서, 또는 뭔가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남들과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하고 싶어서다. 세살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에서도 성구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어릴 적 '옹알이'를 할 땐 빼곤 여태껏 스스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화상대가 없다. 얼굴을 본 지도 한참 된 아버지(52)는 일(막노동)을 나가면 한달에 2, 3일 정도 집에 들러 잠만 자다 다시 가버린다. 엄마(28)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한국에 온 지 8년 된 엄마는 아직도 우리말이 서툴다. 필리핀에서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엄마는 한글 배우기가 너무 어렵다며 손을 놓았다. 성구는 툭하면 필리핀 말을 쓰는 엄마를 피한다. 늘 침묵하며 혼자 논다.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한국어 실력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교육이다. 과외나 학원에서 또래 아이들이 실력을 높여갈 때 자신들의 아이는 'ㄱ' 'ㄴ'을 몰라 꿈마저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출신 후앙 낙 주옌(28·여)씨는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해주지 못한다. 아이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이 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런 엄마들의 걱정은 자녀들이 초교에 입학하면서 더욱 절박한 현실이 되고 있다. 읽기, 쓰기가 안 되다 보니 또래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열등감에 휩싸여 교실 밖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대구시가 조사한 결혼이민자가족 실태는 아주 충격적이다. 외국 출신 엄마들의 74.4%가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그 이유로 사교육비 부담, 자녀와의 의사소통 불능, 방과 후 돌보기, 정체성 혼란을 꼽았다.

자녀와의 대화를 한국어로 하는 엄마는 55.1%로 나타나 한국어와 출신국 언어를 병행(32.8%)하거나 출신국어(2.2%)를 사용하고 있다는 응답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엄마들의 언어구사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결혼 7년째인 중국 출신 장슈웬(29·여)씨는 "한글은 중국어와 어순이 다르고 발음이 어렵다"며 "대충 알아듣지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고향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들

일부 엄마들은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쓰는 아이가 안쓰러워 고향행을 준비하고 있다. 뽕피앙(가명·45·여)씨는 딸 다빈(가명·9)이를 조만간 필리핀으로 데려갈 생각이다. 적어도 필리핀에서는 공부 때문에 구박을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뽕피앙씨가 한국에 온 건 10년 전. 가난이 싫어 성실하다는 말만 믿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다빈이를 가졌을 때 빙판길에서 넘어져 필리핀 친정으로 갔고, 그곳에서 다빈이를 낳았다. 다빈이를 키우느라 3년을 남편과 떨어져 있었다. 한국을 다시 찾아와 잘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다빈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 아이는 말문을 닫아버렸다. 딸은 그곳에서 늘 외톨이였다.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해도 다빈이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이 한글을 깨칠 때가 됐지만 다빈이는 짧은 단어마저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는 학원에 보냈지만 몇번 나가다가 혼자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다 돌아오곤 했다. 곧 3학년이 되는 다빈이의 한글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받아쓰기 점수는 '빵점'에 가깝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국어는 물론이고 수학 등 다른 과목도 실력이 형편없어 꼴찌를 도맡고 있다. 기가 죽은 다빈이는 늘 땅만 바라보며 걷고 걸음걸이도 시원치 않다.

남편과 사이도 좋지 않아 이혼소송 중인 뽕피앙씨는 "필리핀에서는 한국처럼 공부를 시키지도 않고, 공부를 못한다고 놀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절실한 언어교육

올해 네살인 김민우(가명)군은 1년째 경북의 한 사설 언어치료교실에 다니고 있다. 발달지체와 주의력 결핍, 자폐 현상까지 동반한 민우는 요즘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모든 것이 처진다. 김군을 담당한 언어치료사는 "민우의 경우 선천적 장애보다는 2세 6개월 이후 '언어폭발기'에 언어적 자극을 못 받아 발생한 외부영향이 크다"고 했다. 서툰 발음은 나중에라도 교정이 가능하지만, 많은 단어와 문장 학습을 통해 언어적 감각을 깨우쳐야 할 시기를 놓치면 의사소통 저해는 물론 발달지체까지 동반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집에서의 2차적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엄마마저 우리말이 서툴다 보니 치료가 더디고 언어 구사력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북대 정정희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치우쳤던 정부 정책들이 올해부터 자녀 교육에 집중되고 있지만, 상당수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언어적 학습기를 아무렇게나 흘려버려 학력저하와 그로 인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며 "다각적이면서도 체계적인 교육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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