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을 거친 21명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신선한 감각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거개의 작품이 산문적인 발상이거나 묘사에 그쳐 있어서, 패기 있는 언어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시가 삶이나 자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뜻에서 최정아의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이정희의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 류화의 「그녀의 검은 봉지」, 김승훈의 「곤달걀의 비명」, 김지훈의 「바다 복사실」, 이담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정학명의 「구름정원의 기억」 등은 사물을 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서 시의 기초가 튼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봉지」는 이야기체를 못 벗어나는 한계를 보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가상의 공간을 제시하는 만큼 리얼리티가 부족한 것 같았고, 「곤달걀의 비명」은 곯아버린 병아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돋보였으나 강한 인상을 줄 만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은 베란다의 식물을 극화한 것은 신선했으나 역시 식물들의 구체화가 아쉬웠다. 「바다 복사실」, 「구름정원의 기억」,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는 현실과 상상, 외계와 내면을 무리 없이 넘나드는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바다 복사실」은 재깍거리는 복사실의 이미지를 바다 이미지와 멋지게 오버래핑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효과를 내는 데는 미숙해 보였다. 「구름정원의 기억」은 터프한 호흡이 매력적이었지만, 사물을 형상화하는 능력에서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만 못했다. 최정아의 이 작품은 활달한 상상력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세계가 제의적(祭儀的)으로 살을 채워나가면서도 상당한 예술적인 즐거움과 깊이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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