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푸른병원의 한 병실에서 만난 한결(8)이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7일 뜨거운 물에 왼쪽 팔을 데어 병원으로 온 뒤 4번의 수술을 거친 한결이는 "오른쪽 허벅지 살을 떼서 왼쪽 팔에 붙였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남자아이에게 치마를 입힌 것도 허벅지에 자극이 덜 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경북 경산시 남산면의 시골마을에서 사고를 당해 대구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한결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소형게임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게임기는 사고 당시의 기억과 수술 후의 고통을 잊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결이의 아버지 이정호(가명·39)씨는 "수술을 받느라 고통이 심했을 테고 이후에도 많이 아파해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하라고 게임기를 사줬다"고 했다. 학원은커녕 학습지를 받아보는 게 고작이었던 아들이 1등을 해 기특하다는 이씨. 20만원 상당의 게임기는 분명 경제적으로 무리였지만 평소 시골마을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던 아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었던 선물이었다고 했다. 아들이 왼팔에 입은 상처에 조금이나마 사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랜 기간 아들을 몸이 불편한 부모님께 맡겨온 터였다.
한결이가 사고를 당한 건 지난달 7일 오후 5시쯤. 차가운 날씨에 시골집 흙마당에는 군데군데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마당 한쪽 가마솥에서는 빨래에 쓸 물이 끓고 있었다. 조부모와 함께 살던 한결이는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한결이는 이후를 애써 기억해내려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뛰놀던 마당에서 그런 사고가 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마당에 고인 살얼음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열려 있던 가마솥 안으로 한결이의 왼쪽 팔은 겨드랑이까지 빠져들었다. 갑작스런 사고에 당황한 할머니는 찬물로 열을 식히는 것도 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3도 화상. 피와 진물이 선연히 보일 정도였다.
할아버지(76)는 시각장애 1급으로 앞을 분간하기 힘겨웠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에 어디선가 달려온 할머니(71)가 한결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간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한 달 가까이 손자를 간호하고 있었다.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손자의 상처가 자신의 탓인 것 같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결이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돌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이혼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혼자 키울 수 없었던 이씨는 경남 김해에서 일자리를 잡았지만 2년 전 왼쪽 무릎을 다쳐 5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산업용 가스를 다루는 회사에 다녔던 이씨는 수소가 담긴 가스통이 쓰러지는 것을 막으려다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소가 근처에 있던 암모니아와 닿았더라면 대형사고로 연결될 뻔했기에 우선 막고 보자는 마음에 몸을 던졌다는 이씨. 그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지만 후유증이 지속되면서 새로 직장을 구하기가 쉽잖은 형편이다.
한결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이웃들이 나섰다. 한결이가 다니는 경산남산초교 어린이회의에서는 지난달 18일 '한결이를 돕자'며 모금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 전교생 61명의 집으로 한결이의 사고와 현재 정황을 담은 안내장을 발송했다. 그 결과 학생, 학부모 등으로부터 334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학교는 이렇게 모은 돈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했다. 공동모금회 측에서도 1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돈으로는 태부족.
김상규 푸른병원 원장은 "여러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들었다"며 "병원 측에서도 최대한 병원비를 줄여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2년간은 물리치료 등을 받아야 해 상당한 돈이 들 전망이다. 당장 6개월 정도 걸리는 손목과 팔꿈치 두 부분의 재활 여부를 가늠하는 데도 1천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 지금까지 한결이는 수포를 걷어내는 수술, 사체피부 이식, 허벅지 이식, 배양피부 이식 등 4번의 수술을 거쳤다. 흉터는 남겠지만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팔로 만들려면 레이저 치료 등을 병행해야 한다. 앞으로도 2개월은 더 병원에 있어야 해 병원비만 80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아빠가 자주 옆에 있어서 병원이 좋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병원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는 한결이는 영락없는 8세짜리 꼬마였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알림)지난 이웃사랑 지면(12월24일자)이 2008년도 결산 기사로 구성하며 사연이 소개되지 않아 이번 주에는 성금 현황이 실리지 않습니다. 연말에 성금을 보내신 분들은 다음 주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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