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도마뱀을 좇아서/서정춘

한때, 나는 타이프라이터를 일컬어 나의 손가락을 타닥! 타닥! 잘라 먹은 섬칫한 괴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잘라 먹힌 나의 손가락은 도마뱀을 좇아서 들로 산으로 달아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 시인은 기계타자기로 원고를 쓰는 듯싶다. 연필이나 만년필에서 기계타자기로 옮기는 데 몇 년이 걸렸을까. 그 두근거림에서 설렘까지의 간격이 궁금하다. 과작의 시인에게 말이란 범람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검열이 엄격했으리라. 말을 줄이고 말을 버릴 것. 시인에게 시란 쟈코메티의 조각처럼 원형과 본질의 사원이란 자각이 있어 왔던 게 아닐까. 말을 죽이고 말을 놓아줄 것. 말을 함부로 남발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야말로 시인이 억제해야 하는 섣부른 감정이다. 그 명쾌한 논리가 타이프라이터-타자기란 말 대신 쓰인 이 외래어는 겉으로는 '타닥! 타닥!'이란 의성어와 짝을 이루고 안으로는 말의 복잡성과 말의 자기 증식을 상징하는 듯하다-를 괴물로 바꾸어 손가락을, 손가락의 움직임을, 무수한 말을 찍어내는 손가락을 집어삼키게 한다. 손가락은 바로 시인이 생각했던, 혹은 생각한 김에 내쳐 종이에 찍었던 언어들이다. 버리고 버려도 다시 생겨나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말은 자기증식을 한다는 두려움을 금방 읽을 수 있다. 손가락이 도마뱀을 좇아간다라고 할 때의 도마뱀이란 바로 징그러운 파충류의 말이다. 말이란 파충류처럼 징그럽다는 의식이 먼저이고 말을 언어의 원시적 사원으로 해방시켜야 말은 말다워진다는 윤리가 나중이다. 나에게는 말을 줄이고 말을 버리고 말을 죽이거나 말을 자유롭게 해주었던 시인의 괴로운 시적 행위가 느린 비디오 화면처럼 재생된다. 시가 되어 나온 「도마뱀을 좇아서」만이 시가 아니라 「도마뱀을 좇아서」를 발표하고도 괴로웠을 그 후까지 모두 다 시의 밑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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