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큰 물길을 연 봉화는 경북의 산길도 열고 있다. 경북의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백두대간을 걸어보겠다는 일념으로 강원도와 봉화의 경계인 태백산 문수봉(1,517m)으로 향했다. 한겨울 1천m를 넘는 고봉이 즐비한 대간 앞에 서니 첫 기세가 한풀 꺾여버렸다. 길이 험하고 눈까지 내려 차와 두 다리를 총동원해 갈 수 있는 데까지 대간의 품 속으로 다가갔다. 봉화의 북쪽을 지나는 대간은 태백산, 구룡산(1,346m), 옥돌봉(1,242m), 선달산(1,236m), 각곳산(966m·각곳산을 지나면 영주의 소백준령이 시작된다)까지 32㎞이다. 하얀 눈을 품고 불끈 솟은 백두대간의 위용만 바라봐도 가슴이 벅찼다.
대간은 대간의 위용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산(청옥산, 문수산, 각화산 등)도 거느리고 있다.
아쉽지만 대간의 장대함을 머릿속에 담고 청옥산(1,277m)과 청옥산을 휘두른 고선계곡으로 향했다. 청옥산의 '숨은 진주'를 보기 위해서다. 청옥산지킴이인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상을 팀장은 "청옥산은 국내 최고 수림을 자랑하는 휴양림으로 유명하지만 그 진면목은 고산습지와 수많은 야생화"라고 했다.
청옥산은 입구부터 일행에게 감탄사를 자아냈다. 쭉쭉 뻗은 미녀의 다리처럼 금강송과 낙엽송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그 사이의 쪽빛 하늘이 청옥의 길을 내고 있었다. 길 양옆의 수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2시간이나 걸어 도착한 정상 바로 아래의 능선(1,080m)에 다다르자 메마른 겨울인데도 습한 기운이 엄습했고, 나지막한 나무와 꽃잎 떨어진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했다. 청옥의 진주였다. 이 팀장은 "청옥산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온한 산이자 정상에 습지를 갖고 있는 산"이라고 설명했다.
여름에 물이 철철 흘러넘쳤을 만큼의 크고 작은 습지가 산 중턱까지 길게 형성돼 있었고, 습지를 따라 조성된 야생화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꽃들이 만발할 봄을 연상하니 장관을 이루고도 남아 보였다. 이 팀장은 청옥에 오면 4번 놀란다고 했다. 봄에는 청옥의 야생화에 놀라고, 여름에는 계곡을 따라 길게 내려오는 안개에 심취하자마자 가을 단풍에 또 한번 놀란다고 했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꽃이 아예 혼을 빼버린다고.
원시림이 40㎞(100리)에 이른다는 고선계곡(일명 구마동계곡·아홉 마리의 말이 달릴 만큼 길다는 뜻)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국내에서도 손 꼽을 만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보존된 계곡이다.
하지만 어쩌랴. 고선은 360년 만에 찾아온 물난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계곡은 넓었다 좁았다 하며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일 만큼 길고 깊었지만 뿌리째 뽑혀 널브러진 금강송은 일행에겐 바로 아픔이었다. 여하튼 청옥은 백천과 고선이라는 봉화를 대표하는 계곡을 모두 거느리고 있고, 백천과 고선은 청옥의 물을 담아 낙동강의 큰 물길을 열고 있어 봉화의 큰 자랑이 아니겠는가.
산과 물길을 연 봉화에는 꼭꼭 숨은 역사·문화유산이 많다. 봉화를 찾는 이들은 산과 물에만 심취해 역사·문화는 주마간산으로 지나쳐 버린다고 한다.
낙동강의 물길 지킴이인 운곡천에서 역사·문화 여정을 시작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이 깊은 산골에 고대 부족국가의 흔적이 있었다. 춘양면 도심3리 황터마을 일대다. 고산준령이 에워싼 가운데 마을은 넓은 언덕에 위치했고, 마을 앞에는 운곡천이 흐르고 있어 국가가 설 수 있는 입지였다.
부족국가의 흔적과 전설이 이를 증명한다. 부족국가가 형성된 시기에 구리왕이 나라를 세우고 살았다고 해 '황터'라고 부르게 됐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앞 당집에 구리왕의 위패와 구리왕의 내력을 적은 기록문, 구리로 만든 말 두마리가 함께 보존돼 있었다고 한다.
황터마을 북동편으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 성재이고 그 잿마루의 돌을 주워다 석성을 쌓은 유적도 남아 있어 구리왕국의 실체로 추측된다. 정민호 학예연구사는 "구리왕이 30명의 병사를 동원해 이웃 소라국을 징벌했다는 전설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데, 춘양 서벽에 소라리라는 마을 이름을 미루어볼 때 구리왕국과 소라국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대국가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봉화지역 역사문화의 상징이자 첫 출발선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도심리 건너편에는 운곡천에 물을 내주는 각화산이 위치한다. 각화산은 태백산사고지로 이름나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각화사는 바로 태백산사고의 수호사찰로 유명하다. 지금은 사고 터만 남아 있다.
태백산사고는 한양의 춘추관,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 사고와 더불어 조선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다. 1606년에 지어져 일제 강점기 때인 1913년까지 300여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역사적인 곳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실록이 경성제대로 옮겨졌고,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고대국가가 존재하고, 조선왕조의 역사를 300년간 지켜온 문화 유산은 봉화의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글·이종규기자 봉화·마경대기자 사진·정재호기자
자문단 : 정민호 봉화 학예연구사 / 정도윤 청량산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김주현 낙동강수질관리위원회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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