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정한 모정

중국 춘추시대 王孫賈(왕손가)는 齊(제)나라 민왕의 신하였다. 그 어머니는 자식을 몹시 사랑하여 그가 입조해 혹 귀가가 늦을라치면 대문에 기대 서서 아들을 기다렸다. 燕(연)나라가 제나라 도성을 공격하자 민왕은 황급히 피신했다. 왕손가도 급히 뒤따라갔으나 왕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어머니가 아들을 꾸짖었다. "네가 아침에 나가 돌아오는 것이 늦으면 나는 대문에 기대 기다렸고, 네가 저물 녘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에서 기다렸다. 너는 지금 왕을 섬기는 몸으로 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단 말이냐." 여기서 유래된 倚門倚閭(의문의려), 依門之望(의문지망) 등의 고사성어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간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부모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자식이 어릴 때는 물론 장성한 후에도 이래저래 걱정될 때가 많은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은 부모의 사랑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준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 탓일까. 최근 대구지법이 친권 상실 선고를 내린 어느 어머니의 비정한 행각이 자못 충격적이다. 10여 년 전 남편과의 불화로 어린 자녀 셋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던 여성 얘기다.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던 남편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자 그간 연락조차 끊었던 어머니가 나타나서는 보상금을 가로챘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사고는 자녀들에게 집을 나가줄 것을 강요했다. 자식들이 거부하자 인감 분실 신고를 내고는 자녀의 통장 잔고마저 꿀꺽했다. 아파트도 갖은 잔머리를 굴려 자기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버렸다. 자녀들은 결국 법원에 친권 상실 심판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가차없이 친권 상실 선고를 내렸다.

종전엔 친권이 부모의 고유 영역처럼 인식됐지만 최근의 우리 사회 현실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인천에서는 어린 딸을 수차례 성추행한 아버지에 대해 사상 최초로 검사가 친권 상실 심판을 청구, 법원이 심판을 확정했다. 게다가 10여 년 전 가출한 뒤 자녀를 방치했다가 담당검사의 노력으로 자녀와 재회했던 그 어머니 또한 이내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또다시 가출을 해 친권이 상실됐다.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이 적지 않은 시대다. 비정한 모정에 친권 상실 철퇴를 내린 것이 속시원하면서도 이다지도 삭막해진 세태가 씁쓸하기만 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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