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밟히는 흙 한줌일지언정 아름드리 큰 나무를 튼실하게, 또 변산 바람꽃이나 꽃다지처럼 작지만 어여쁜 꽃을 피워 냈을 터이니 그 또한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애를 써도 쉽사리 사람을 그리 대할 수 없는 것은 나 스스로 현상에 집착하여 본지로 가지 못한 탓이겠지요. 나무나 꽃 그리고 바위나 안개와 같은 것들은 서로 서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뿐 해치지 않습니다."(해박보·解搏步를 걸어 풍경이 될 수 있다면 중에서)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이지누 찍고 씀/샘터 펴냄/257쪽/1만2천원
"하긴 영원히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신(神)들은 지루해질 만하면 몸을 바꾸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지극히 부러워한다지 않던가. 그래서 지리산을 오가며 성품을 깨쳤던 서산 대사의 제자 풍담은 마음과 현상계의 놀이를 관(觀)하다 별처럼 지는 순간 이렇게 노래한 것일까. 기이한 영물은 죽음에 이르러 더 즐겁구나."(하늘이 문을 열다 중에서)
『하늘이 감춘 땅』 조현 지음/한겨레출판 펴냄/319쪽/1만4000원
한 달여 만에 지난 주말 고향집을 다녀왔다. 칠순 노모께서 직접 뜨신 털조끼를 내어 놓으셨을 때, 마흔의 끝자락에 겨우 매달려 허둥대고 있는 못난 아들은 차마 울지도 못했다. 젊은 날 내내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몹쓸 자식을 위해 어두운 눈으로 한 달 가까이 한 뜸, 한 뜸을 이어 뜨신 털조끼를 보면서 세상을 구하겠노라고 외치며 어머니를 외면했던 어리석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머니 한 분을 구하지 못하고 어느 누구를 구한단 말인가." 『하늘이 감춘 땅』에서 읽었던 출가 후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수행을 거듭했던 대정 스님의 인연담(因緣談)이 가슴을 찔렀다. 책을 읽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작가 이지누가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풍경(여행과 떠남)에서 치유하고 작가 조현이 하늘이 감춘 땅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듯이 미처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잊고 있었던 것들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 분명 책의 유용함이다.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과 『하늘이 감춘 땅』에는 모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두 책은 세상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간과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노릇임을 말한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연 속에서도 더욱 선한 것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바람을 보듯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 사람노릇이 있음을 두 저자는 조심스레 풀어내고 있다.
보자기에 털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조끼를 싸면서 오십이 넘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수고 앞에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다시금 대구로 돌아오는 길, 버나드 쇼가 말한 "방문하기엔 좋은 장소이나 머물러 있기엔 쓸쓸한 장소" 인 고독이 일요일 오후 신부산고속도로에 어둠으로 짙게 깔리고 있었다.
전태흥 여행작가 (주)미래티엔씨 대표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