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겨울 가뭄 끝에 눈이 내렸다. 도시에 내리는 눈이 금방 도로에 쌓이면 차선은커녕 중앙선조차 분간이 안 돼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런데 그 길이 뒤차에는 표지 구실을 하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일찍이 서산 대사는 '눈길을 어지럽게 비틀걸음 하지 마라'는 게송을 남겼다. 오늘 내가 밟은 길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89년 12월 31일. 백담사에 유폐돼 1년여를 버티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5공 및 광주특위 합동청문회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했다. 증인석에서 일괄답변서를 해명처럼 읽어가던 전 전 대통령을 향해 당시 민주당 노무현 의원이 명패를 집어던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의 무용담은 일부의 '속 시원하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품위를 잃은 그의 무절제한 행위는 그가 대통령이 된 뒷날에도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동물이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만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유명해지더라도 드러나지 않기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공자는 不義(불의)를 행한 기록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위가 낮은 사람의 하찮은 행위라도 나쁜 일은 역사에 기록한다고 했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움직일 때 예를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행동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春秋(춘추)에 기록거리가 되지 않는, 주 나라 대부 흑굉이 魯(노)나라에 투항한 사실을 적으면서 한 말이다. 잘못은 감추려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欲蓋彌彰(욕개미창)이란 고사는 여기서 연유한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가 어저께 "국회에서 이어진 충돌에 공당의 대표인 제가 한 당사자가 되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과 국회사무처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난하며 사과보다는 긴 변명과 떠넘기기로 또 한 번 국민을 무시했다.
그는 지난 5일 국회에서 국회의장 집무실을 철봉으로 밀치고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공중부양'을 하는 활극을 펼쳤다. 그도 훗날 정치적 성공을 꿈꾸는가. 국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하긴 욕개미창이 어디 강 대표에게만 해당하겠나.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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