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고용 빙하기 '워크 쉐어링'의 성공 조건

일자리 창출.삶의 질 동시 증진/유기농.친환경 쪽 적극 관심을

2008년 12월의 취업자(사업가나 자영업자, 근로자)는 모두 2천324만5천명으로, 1년 전보다 1만2천명이 줄었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2008년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2009년 경기 전망도 갈수록 기대치가 축소되거나 비관적이다. 100만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은 더 심각하다. 오죽하면 대학 졸업식을 '실업식'이라며 쓴 웃음을 짓는가?

2008년 12월에만도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에서 취업자가 수십만명 감소했다. 곧 다시 수십만명의 졸업생이 나오는데 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 체감하는 현실은 더 심각하다. 전망이 불투명해 그런지 요즘 군 입대 지원자가 엄청 늘었다.

이런 '고용 빙하기'를 염두에 둔 듯,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임금을 낮춰 고용을 늘리는 '잡 쉐어링' 을 도입하자"고 국민과 근로자들에게 호소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졸 초임을 깎아 일자리를 늘리자"는 구상도 제안됐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 난국을 돌파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고용빙하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일자리 나누기의 두 방식인 잡 쉐어링(Job Sharing)과 워크 쉐어링(Work Sharing) 사이엔 미세한 개념의 차이가 있다. 잡 쉐어링이란 한 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나눠 맡음으로써 일자리를 나누는 거다. 한 사람의 풀타임 일이 두 사람의 파트타임으로 된다. 반면 워크 쉐어링은 전체 국민경제에서 일의 총량(맨아워)을 되도록 많은 이에게 나눠 일자리를 늘린다. 예컨대 9명이 10시간씩 하던 일을 모두 6시간씩만 하면 총 15명이 필요하다. 9명의 일자리 보존은 물론, 추가로 6명의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다.

두 방식 다 일정한 임금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고용 형태에서 차이가 난다. 즉, 잡 쉐어링은 정규직을 두 명의 비정규직으로 나누지만, 워크 쉐어링은 모든 정규직의 노동시간을 줄인다. 보다 나은 대안은 당연히 후자다. 실제로 독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사에서도 약 3분의 1정도의 고용감축이 필요했을 때, 회사와 노조는 머리를 맞대고 정리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적극 대응했다. 반면 IMF 사태 이후 현대자동차에서는 약 3분의 1정도의 고용감축을 위해 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함으로써 극한투쟁을 자초했다.

그런데 독일조차 폴크스바겐 사례가 일반화된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실효성을 거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워크 쉐어링이 제대로 실효성을 가지려면 몇몇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한 회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전반이 그런 협약을 맺어야 한다. 자유 경쟁이 아니라 경쟁 제한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것 없이 개별 사례로만 이뤄지면 먼저 하는 곳이 손해다.

둘째, 워크 쉐어링이 임금 감소를 불가피하게 동반한다면 직접 임금 감소를 상쇄할 간접 임금 또는 사회 임금을 보충해야 한다. 즉, 생활비 중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만이라도 사회공공성 차원에서 풀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공동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셋째, 재원 조달은 소득세 누진제 강화, 온갖 탈세 및 漏稅(누세)의 철저한 포착, 사회적 필요성이 적은 낭비성 공공지출 배제, 평화 협정 등을 통한 국방비 절감 등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조세 혁신이 절실하다.

넷째, 고용대란을 막는답시고 아무 일자리나 보호하고 늘려선 곤란하다. '삽질' 일자리나 '공해' 일자리는 안 된다. 반면에 유기농, 친환경 일자리는 늘릴수록 좋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자리를 늘리자.

요컨대, 단순히 대졸자 초임 삭감이나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과 같은 임기응변적 방책보다는 일자리와 삶의 질을 동시에 증진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것이 고용 빙하기라는 난관을 오히려 적극적 사회 발전의 지렛대로 삼는 '지혜의 길'이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교수·조치원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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