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는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은 '간다는 연락도 없이' 아내가 홀로 사는 대전의 원룸에 갔다. 집은 비어 있었다. 저녁 늦게 들어온 아내는 웬 남자와 함께였다. 현관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두 남녀는 껴안고 입 맞춘다. 아내의 대학 선배라는 사람. 결혼식 때도, 집들이에도 왔던 남자였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는 동안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혼해버릴까, 절대 용서하지 말자…. 그러나 한달이 지나는 동안 '아내가 측은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아내를 용서하고 어떻겠든 살아보자고 했다. 아내가 원한다면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모른 척 해줄 마음도 있었다. 그런 자신도 아내 외의 여자를 만나, 친하게 지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아내가 홀로 사는 원룸을 다시 찾았다. 화해하고 싶었다. 신경질조로 문을 열어 준 아내 뒤에 선배라는 남자가 '내 잠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일부러 도망갈 틈을 주었지만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소소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두 사람 손에 나는 쫓겨나고 말았다.
오철환의 소설집 '오늘'에 포함된 단편소설 '장미에는 가시가 없다'의 줄거리다. 소시민인 나는 아내의 배신을 확인하고 분개한다. 그러나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니 그 가시를 인정하고,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하지만 장미에 붙은 가시인줄 알았더니, 온통 가시투성이다. 그러니까 '장미에는 가시가 없다'는 제목은 역설이다.
오철환의 이번 소설집 '오늘'에는 8편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대부분 소시민들이다. 소시민인 그들은, 마음에 차지 않지만 자신이 소시민임을 인정하고, 욕심 없이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그가 소시민임을 인정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소시민인 그에게 훨씬 더 멀찍이 쪼그라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설 '인연'은 엉큼한 중년 남자가 겁 없고 맹랑한 아가씨를 유혹하려다가 낭패 보는 이야기다. 종교인의 위선과 아름다움의 위력을 보여준다. 작품 '오늘'은 학력만능, 황금만능과 성 개방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탈춤'은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기다림의 끝'은 친구의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첫 경험 때문에 자아를 잃고 표류하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사랑과 실존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분노의 새'는 월광곡, 유의사항, 비상 등 3개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고시원에서 20여년을 생활하고 있는 고시생의 눈과 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오철환의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생활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에 오철환의 '잣대'를 들이댄 것들이다. 어쩌면 오철환은 '세상은 어째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갖고 있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들은 우리가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248쪽, 1만1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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