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적벽대전에서 배운다

숱한 용병술'戰法 동원된 명승부/지역 재도약 이끌 전략가 없을까

기축년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할 영화 '赤壁大戰'(적벽대전)을 주목해본다. 위'오'촉 삼국의 흥망성쇠를 흥미진진하게 그리며 수많은 전술 전략과 처세술의 지혜를 두루 담고 있는 人間學(인간학)의 보고 '삼국지'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벽대전은 삼국지 중에서도 청사에 길이 빛날 명장면으로 중국 영화 특유의 장쾌한 스케일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많을 법도 하다. 적벽대전은 외교전략을 비롯해 連環計(연환계) 反間計(반간계) 苦肉計(고육계) 등 숱한 계략과 책략이 결집된 명승부였다.

오나라 장군 주유의 반간계에 넘어가 水戰(수전)에 강한 장수의 목을 베어버린 조조의 실책과 방통의 연환계에 걸려 대규모의 전함을 모두 쇠사슬로 엮어버린 패착, 그리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노장 황개의 고육책이 어우러진 예술과도 같은 전과인 것이다.

영화에서도 한겨울에 동남풍을 찾아낸 제갈공명의 지모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듯이, 특정 지역의 예외적인 기상조건까지도 놓치지 않은 주도면밀한 작전과 장수들의 구국살신의 정신이 없었다면 천하 삼분의 분수령이 되었던 적벽대전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북방을 평정하고 강남의 오나라를 석권해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조조의 백만대군이 그처럼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長江(장강)의 물결은 또 다른 무늬를 띠고 흘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후삼국의 패자를 결정 지은 대접전이 강 언저리에서 불붙었다.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안동에서 일어난 고창전투이다.

대구 공산전투 이후의 거듭된 패전으로 경상북도와 강원 남부 지역을 송두리째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던 고려 태조 왕건의 위축된 전세를 일시에 반전시킨 것이 고창전투였고, 그 선봉에 유금필 장군이 있었다. 승세를 탄 후백제의 견훤이 고창(안동)을 포위하자 930년 정월에 열린 고려군 작전회의는 침울하기만 했다.

장수들이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退路(퇴로)부터 걱정을 했고 대다수가 정면대결을 회피하고 지구전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목숨을 걸고 앞장서 후백제군을 격파하면서 고려군에 승기를 잡아준 장수가 유금필이었다. 적벽대전에서의 황개와 같은 역할이었다고 할까. 물론 여기서도 낙동강과 안동이라는 독특한 지세와 기후가 충분히 활용되었을 것이다.

만약 고려군이 고창전투에서 다시 패배를 했거나 지구전으로 나갔다면 안동은 물론 영천과 청송 등 경북 일대와 동해안의 수많은 고을이 후백제로 넘어가 견훤은 천하의 패권을 틀어쥐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낙동강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개인은 물론 지역이나 나라에도 時運(시운)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잃어버린 15년'이란 말이 회자되듯이 오랜 침체의 터널을 지나온 대구경북 지역에도 모처럼 '동남풍'이 불고 있다. 지역 출신 대통령을 배출한 지 1년, 대구시와 경북도는 전례 없이 많은 정부 예산을 확보했고, 이번 정부 개각에서도 지역 출신들이 요직에 두루 발탁되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SOC사업 추진과 오랜 숙원사업 해결에 물꼬가 트일 게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의 침체와 소외를 벗어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주민들의 개발에 대한 욕구불만과 발전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대구경북이 재도약의 돛을 올리고 새로운 낙동강시대를 열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도 단체장을 비롯한 주요 공직자와 정치인은 물론 출향 인사들과 지역 주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적벽대전과 고창전투처럼 특화된 시책 개발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실속 없는 체면과 자존심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일은 자중지란과 소이기주의적 保身(보신) 행각이다.

아무리 동남풍이 불어와도 치밀한 전략과 멸사봉공의 기개가 없으면 큰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적벽대전에서의 제갈량이나 주유 같은 지략가는 없을지라도, 고창전투에서 활약했던 유금필처럼 大義(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인물이 그리운 기축년 벽두이다.

조향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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