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을 끼고 도는 계곡이 낙동강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청량산(870m) 턱밑 마을인 '두들마을'을 찾았다. 두들마을이 낙동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들마을 사람들은 거의 떠나고 절벽 위에 사는 노인 부부 두 가구와 몇해 전 귀농한 젊은 농부가 전부였다. 노인 부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네 발(?)'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절벽 위에 다다랐다.
심동출(72·사진)씨는 청량산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다. "7살 때 아부지 따라 산을 넘어 이틀 걸려 왔니더. 여기서 66년째 살고 있니더." 절벽 위 외딴 곳, 청량이라는 병풍과 절벽 아래 굽이치는 낙동강을 동시에 안고 살고 있는 심씨는 '신선'이었다. 하지만 심씨의 평생을 바친 비탈진 밭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비탈진 밭은 3만3천㎡(1만평)는 족히 보였으나 그 기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밭일하던 아낙이 힘들어 도망도 갔제. 산 넘어 묵어 자빠진 거 하고, 저 우로 밭 7마지기(약 2천평)가 더 있제. 다 대추농사 지어 장만한 것이더. 뭐 별거 있어. 몸 하나만 있으면 됐제."
심씨는 한 해 대추 80가마를 족히 땄고, 마당에는 대추 건조대까지 갖춰 봉화, 영주, 안동의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대추 농사 지어 4남매를 초등학교 때부터 영주로 보냈니더."
돈 버는 일은 '고통길'이었다. 운송수단이라고는 지게가 전부였다. 지게에 대추 한가마를 지고, 밭에서 집 마당으로, 건조한 대추를 다시 지고 청량산 입구의 나룻배(광석나루터)까지 수백번을 반복했다. 두들마을은 모든 것을 지게에 지고, 머리로 이고서 날라야만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정도윤 청량산문화연구회 사무처장은 "대추 수확은 두들마을의 가장 큰 농사다. 수확기에는 삯일꾼들도 집집마다 열 명은 족히 됐을 정도"라며 "힘든 대추 농사지만 마을사람들이 빚 안지고 자식을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한 밑거름"이라고 설명했다.
"지게 지고 댕기는 것은 하나도 겁나지 않니더. 비료가 나온 뒤부터는 대추나무에 병이 생겨 농사를 못 지은지도 오래 됐니더."
심씨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고추농사에 쓸 작대기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톱질과 낫질을 했다. "지금은 힘든 게 별로 없니더. 전기도 들어 왔고, 영주에 사는 아들이 가스(LPG)도 알아서 갖다 주니더."
심씨의 농삿일을 방해할 수 없어 절벽 아래로 발길을 옮겼다. 수십년 마을의 운송수단이었던 지게를 '꼬마케이블카'가 대신하고 있었다. 두들에도 문명이 다가오고 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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