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허허, 그것 참!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 말했다가 "감히 내 고향을 모욕" 된통

나에게 경남 통영은 그 무엇보다도 스승이신 초정 김상옥 선생의 고향이다. 언제 가 봐도 그렇지만 스승이 아직 이승에 계실 때, 스승을 모시고 함께 갔던 통영은 현실이 아니라 그 무슨 환상이고 몽환이었다. 그때 나는 통영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더할 나위 없이 도취되어 별다른 생각 없이 한 마디 오발탄을 툭, 던졌다.

"선생님, 통영은 역시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나폴리'군요."

그러나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 말이 일파만파의 파도를 몰고 왔다. 모처럼 고향 바다를 내려다보며 시원적인 평화에 젖어 있던 스승의 얼굴이 갑자기 험악하게 돌변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해일이 막무가내 몰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선생, 방금 뭐라 그랬소. 아니 한국의 나폴리라니, 통영이 어째서 한국의 나폴리란 말입니까."

뜻밖의 사태 앞에서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 한국의 나폴리라는 말은 통영의 아름다움에 대한 최대의 찬사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다른 누가 그러기 전에 통영 사람들 스스로가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저기 보십시오, 나폴리 다방, 나폴리 노래방…."

스승은 그만 화가 나서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이 선생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옵니까. 정말 실망스럽군요. 이 선생마저도? 남이 장에 가면 거름 지고 따라갈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래 이 선생, 이 선생은 직접 나폴리에 가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요?"

나는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럼 통영에는 도대체 몇 번이나 와봤습니까?" "예. 서너 번 와봤습니다."

"서너 번 가지고 통영을 제대로 봤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통영에 와서 어디를 얼마나 가봤어요? 서너 번 와봤다면 남망산 공원이나 한산도에는 가봤겠지만 욕지도 가봤어요? 부지도 가봤어요? 매물도, 연화도, 비진도…. 가봤어요?"

스승은 여남은 개의 섬 이름을 따발총처럼 쏟아놓았다.

"못 가봤습니다." "그럼 용화산 꼭대기엔 올라가 봤나요?" "못 올라가 봤습니다."

"시인 정지용 선생이 해방 직후에 통영에 와서 나와 함께 용화산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은 한려수도의 실로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바로 여기가 천하제일의 절경이다. 오늘 이 절경을 드디어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극찬을 하시고, 감격에 겨워 엉엉 소리 내어 우셨습니다. 따라서 용화산에도 못 올라가 봤다면 통영을 봤다고 말할 수가 없지요."

"……."

"결국 이 선생은 나폴리를 본 것도 아니고 통영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로 모욕적인 격하를 시키는 겁니까. 내가 아는 통영 사람 가운데 나폴리를 다녀온 사람이 있는데, 나폴리를 통영과 비교하는 것은 통영에 대한 실례라도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통영이 한국의 나폴리가 아니라 나폴리가 이탈리아의 통영인데, 통영 사람들부터 자랑 삼아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 떠들어 대니…. 어디 한국의 나폴리뿐인가요. 한국의 슈바이처, 한국의 고흐에다 해동공자와 동방주자…. 이거야 정말 분통이 터져 죽겠어요."

스승은 폭포수같이 뜨거운 웅변을 단숨에 콸콸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광활한 바다에 번져나가는 오디빛 저녁놀을 오래도록, 정말 오래도록 우두커니 바라보고 계시다가 그 무슨 탄식처럼 덧붙이셨다.

"국수주의자가 되자는 게 아니라…. 그래도 피가 아무래도 물보다는 더 진한 법인데, 허허, 그것 참. 허허, 그것 참!"

이종문(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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