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 장병조 삼성전자 부사장 추도기고문>

구미경제계 큰 별이셨던 고 장병조 형에게

장형!

비보를 접하고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 한동안 서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친구처럼 속마음을 풀어놓는 사이였던 장형을 보내고 평소 부르고 싶었던 내 친근함을 장형이 곁을 떠나고서야 이렇게 부르게 됩니다.

기축년 첫 햇살의 온기가 여전히 대지에 남아있는 새해에, 나와 우리 구미시민은 있을 수 없는 황망함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애니콜 신화가 있기까지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의 역사를 구미에서 쓰게 한 장본인인 장형의 안타까운 죽음은 40만 구미시민의 가슴을 겨울 찬 빛보다 더 시리게 만들었습니다.

29년간 1만2천여 명의 구미사업장 임직원을 이끌며 삼성전자에서 구미사업장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만든 장형의 헤아릴 수 없는 업적들은 이 통탄한 심정에서는 차라리 췌언(贅言)에 불과합니다.

그날 아침의 사고는 참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고 검소한 장형의 성품처럼 일요일임에도 출근하기 위해 손수 운전을 해서 내려오다 당한 참변에 할 말이 없습니다.

항상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도 배포와 강단으로 최고의 경제인으로 굳건하게 살아온 장형이기에 이 슬픔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지 마음 추스릴 길이 없습니다.

늘 당당하던 모습, 구미를 걱정하는 그 뜨거운 열정에 나는 늘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습니다. 무엇이 장형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만드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장형은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소신을 가지고 지역 인재 육성에도 큰 뜻을 품었습니다. 그리고는 기꺼이 우리 구미가 인재 육성을 위해 설립한 구미시장학재단의 이사를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하셨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정이 있고 따뜻해야 한다며 나와 나란히 서서 손수 김장김치를 버무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던 장형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경제논리로만 기업의 입지를 풀어갈 때, 장형은 구미와 지역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당당하게 외풍을 막아낸 구미경제의 버팀목이셨습니다. 지금의 구미경제를 이룬 장형의 발자취를 더듬어 공덕비를 구미시민의 이름으로 꼭 세우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했는데 이리 허망한 일을 당하게 되니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40만 구미시민은 분명 구미경제에 한 획을 그은 '장병조'라는 이름 석자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 경제인으로 큰일을 이루어낸 장형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되새겨 지금의 경제위기를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구미경제계의 큰 별이셨다가 이제 다시 별나라로 돌아가신 장형의 뜻을 받들어 명품기업도시 구미를 꼭 만들어내겠습니다. 장형의 열정이 40만 시민 모두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어 오늘날의 경제난국을 멋지게 돌파해보겠습니다.

장형의 명복을 빌며 부디 편히 영면하옵소서.

2009년 1월 구미시장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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