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박영봉 지음/진명 출판사 펴냄

2008년 11월, 세계적인 음식점 평가 잡지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는 도쿄를 '가장 빛나는 미식의 도시'라고 발표했다. 도쿄가 어떻게 가장 빛나는 미식의 도시가 됐을까. 여러 사람, 여러 세대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요리문화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린,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다.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기타오지 로산진은 요리를 맛으로만 즐기던 개념에서 벗어나 요리, 그릇, 인테리어, 서비스 등이 하나의 통합된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감각과 신념을 가지고 '호시가오카사료'라는 요리 요정을 열었다.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그릇과 요리는 한 축의 양바퀴'

로산진이 남긴 유명한 구호다. 그는 요리의 반쪽을 철저하게 그릇에서 찾아주었다. 그것이 1925년,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이었다. 로산진의 그릇들은 피카소 같은 거장들의 극찬을 받았고, 경매시장에서 큰 접시는 1억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다. 식기의 가격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가격이다. 그러나 로산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액수였다.

요리와 그릇으로 평생을 살다간 로산진이지만 도예의 세계에서만큼은 우리나라 도예기술을 흠모하고 연구했다. 그는 우리나라 그릇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 각지에 있는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이 책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는 로산진의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박영봉은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음식과 그릇의 어울림이었다. 도자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그릇에 예쁘게 꾸며져 나오는 음식을 보면서 일본에 도자기를 전수한 한국인으로 착잡한 심정이었다. 나는 로산진을 통해 우리의 요리와 그릇을 되새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로산진은 아름다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였다. 조선의 도자기, 가구, 김치, 중국의 도자기, 전각, 일본의 무엇이라도 아름답다면 무엇이든 흡수했다. 그것들은 로산진 예술의 자양이었고 자신만의 예술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로산진은 요리의 궁극을 추구했다. 그에게 궁극이란 자연을 닮는 것이었다. '일본의 요리는 일본 그릇에 담아라'고 외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요리 재료, 요리를 담는 그릇,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까지 철저히 조화를 이룬 하나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에게 요리는 미각을 넘어 오감으로 즐기는 무엇이었다.

이 책은 요리와 도자기를 통해 한 일본인을 알고, 그 일본인을 통해 일본을 알고, 궁극에는 우리요리, 우리 그릇, 우리를 알자고 말하고 있다.

제 1장은 지은이가 로산진이라는 일본인을 알게되고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다. 2장은 어린 시절부터 식객으로 떠돌며 서예, 도자기, 전각, 요리를 익힌 로산진이 청춘기와 일본 최고의 요리인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3장에서는 엄청난 도자기 작품을 남긴 로산진의 도예가로서의 삶과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가로서 그의 이념과 장인으로서 삶을 살피고 있다. 4장에서는 요리와 도자기의 조화를 이끌어낸 로산진의 요리정신에 관한 이야기다. 5장은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틀을 거부했던 로산진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한 내용이다. 6장에서는 로산진이 일상과 드러나지 않은 모습, 그리고 죽을 때까지 평생 틀을 거부한 한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7장에서는 비록 우리 땅에 로산진과 같은 인물은 없었지만 우리 밥상에도 희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장은 지은이의 술회에 해당한다.

지은이 박영봉은 시 전문 계간지 '주변인과 시' 편집위원이며 신정희 선생 가마에서 도예를 배우고 있다. 감수를 맡은 신한균 선생은 한국 공예대전에서 특선을 한 사기장이다. 전통 조선사발 선구자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이다. 200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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